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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14. 2024

냉이, 이게 다 얼마야?

줄기와 뿌리 사이를 칼로 다듬고 잔뿌리를 칼로 긁어낸다. 냉이향이 향긋하게 올라온다. 봄이다. 지인을 만나러 갔다. 아침에 밭에서 캐왔다며 준 냉이였다. 나를 위해 캔 냉이라고 생각하니 특별하다. 특별한 냉이를 특별할 것 없이 다듬는 것이 미안하다. 그래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냉이를 대한다.  마트에서 샀을 때는 시든 잎도 많고 뿌리가 질기고 거친데 역시 직접 캔 수제냉이라 다르다. 여리고 깨끗한 잎이 싱그럽다. 사실 냉이는 손질이 쉬운 나물은 아니다. 그래도 봄이 오면 몇 번은 밥상에 올린다. 가족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봄이 얼마큼 왔나 봄소식 들으라고 일부러 준비한다.


평소에 시간이 걸리는 나물을 손질할 때는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지만 오늘은 조용하게 냉이에 집중한다. 마음에서 많은 생각들을 듣고 정리하고 추억한다. 냉이 한뿌리에 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느낀다. 냉이를 캐서 나에게 건네준 손에 담긴 마음을 생각한다. 그분도 냉이를 캘 때 이런 숭고함으로 했을까? 자연이란, 땅이란 이렇게 넉넉한 품이구나 생각했을까? 냉이를 손질하는 나는 땅과 사람의 넉넉함에 겸허해진다. 냉이 한뿌리, 이렇게나 대단할 일인가 싶어서 잠시 웃는다. 냉이 한뿌리, 그렇게나 대단한 거다 대답하고 웃는다. 언 땅을 녹이듯 언 마음을 녹이는 풀잎이다. 그러니까 대단하다. 풀잎 속에 사람을 단단하게 해 줄 것들로 가득 채워서 왔으니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냉이 손질은 번거롭지 않다. 냉이 손질하는 나도 대단하다.


깨끗하게 손질한 냉이가 한소쿠리다. 소쿠리에 담긴 냉이를 보니 기분이 좋다. 와 이게 다 얼마야? 냉이 가격도 비싼데 거기다 캐오신 분의 마음까지 올리니 돈 주고 못 사 먹을 값이다. 나를 위해 마음을 준비한 분이 있다니 행복한 일이다. 냉이 한 소쿠리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아주 살짝. 데친 냉이에 된장과 참기름, 깨와 매실청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봄나물이라 다른 향신채는 넣지 않는다. 오늘의 주인공은 냉이니까 냉이만 향을 낼 수 있다. 접시에 얌전하게 담아서 식탁에 놓는다. 남편이 제일 먼저 냉이나물을 집어먹는다. 냉이 씹는 소리가 좋다. 적당하게 잘 데친 소리다. 아들이 냉이를 먹는다. 음, 맛있어하고 오물오물 먹는다. 이 맛에 냉이 무치는 거다.


시골에 살 때는 봄이면 들로 나가 봄나물 캐는 것을 좋아했다. 냉이며 달래, 쑥을 캐러 친구랑 많이 다녔다. 그렇게 캔 나물 먹는 것을 좋아한 것이 아니다. 친구랑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겨울티를 다 벗지 않은 땅에서 봄을 캐는 것이다. 금방 한 소쿠리 캔 나물을 들고 집으로 가면 엄마는 그 나물로 된장국도 끓이고 쑥버무리도 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땅이 말해주는 순간이다. 이제부터는 들로 나가면 지천으로 먹을 것을 주겠다고. 아직 바람이 차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일 나오라고 땅이 말한다. 그런 순간들을 오늘 저녁 식탁에서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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