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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9. 2022

여름 소리가 깊어가고 있다.

두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작은 바람을 만들어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간지럽히고 있다. 오전 10시, 아직은 견딜 수 있는 더위에 제초를 하는지 제초기 소리가 들린다. 더운데 힘드시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소리가 주는 리듬을 즐긴다. 수요일부터 휴가 기간인 남편과 방학인 아들, 그리고 나는 거실에 모여 나름 각자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다. 두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제초기 소리가 음악처럼 잔잔하다. 편안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리들과 작은 바람과 책.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지 않아도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좋다. 갑자기 새소리가 들린다. 높은 산의 초입이 우리 집 거실 창문 바로 너머에 있다. 산책로 바로 너머 그 산에서 매일 아침 새소리가 들린다. 새들의 소리는 그냥 다 새소리지만 실은 매번 다른 새의 소리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참 좋다 하는 생각을 한다. 적당한 더위와 자연바람이 주는 휴식이 좋다.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좋다.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는  제초기 소리가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주변에 다른 사람도 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서 좋다. 나는 그래서 층간소음에 둔한 편이다. 폭력적으로 싸우는 소리나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걷는 소리나 뛰어다니는 소리에도 예민하지 않다. 누군가 이 삭막한 건물에 소리를 입히고 온기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낀다.


여름이라 아파트 인공폭포에서 폭포가 쏟아진다. 시간을 두고 하루에 몇 번 정도 폭포가 쏟아지는데 그 소리가 싫다고 관리실에 민원을 넣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는 몇 년 동안 개구리 소리에 대한 민원이 들어온다고도 했다. 나는 여름이면 거의 매일 밤 창밖에 우두커니 앉아서 그 소리들을 듣는다.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울다가 갑자기 약속처럼 멈추는 순간들을 함께 한다. 처음에는 개구리가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봄이나 여름에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이 공간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좋아했다. 소리는 존재를 알리는 좋은 도구다.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너의 존재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너의 존재가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회를 먹을 때 신선한 회를 위해 아직 살아있는 물고기의 살을 발라서 그 물고기 몸에 올려 내놓는 식당이 있었다. 아직 숨이 남아있는 물고기를 보고도 사람이 그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물고기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만약에 소리를 내는 동물이라면 아무리 신선한 것이 좋아도 산채로 식탁에 올리지 못할 거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회를 먹지 않지만 지인들과 횟집에 갈 때면 그 말이 생각난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알리는 것이다. 내가 아직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작은 바람에 창밖의 나무들이 짤깍짤깍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한마디 하고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이 공간에 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멀리서 아련하게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여름 소리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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