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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22

남편의 코로나 확진이 나는 그냥 웃긴다.

지난 금요일 남편은 몸이 많이 피곤하다고 했다. 나와 아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책을 출간하고 남편의 비대면 독서수업과 독서모임 강의가 많아졌다. 가게에서도 집에서도 남편은 책을 읽고 강의 준비를 한다. 주말에도 계속 책을 읽는다. 주말만이라도 쉬라고 하지만 뭔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겠다고 덤비는 남편을 말릴 수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몸살이 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 가족 누구도 남편의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코로나 창궐 후에 식당도 안 가고 카페도 안 가고 사람들도 거의 안 만나고 있다. 백신을 3차까지 맞고 나서도 우리의 생활은 비슷했다. 한 달 전 남편의 생일을 맞아 식당에 갔던 게 전부인데 그때 손님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 집에 있는 자가 키트로 남편이 검사를 해봤다. 재미 삼아. 음성이었다. 당연하지 생각했다. 일요일부터 남편의 몸상태가 더 안 좋았다. 우리 가족 모두 자가 키트 검사를 했다. 음성이었다. 우리는 모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감기 기운이 심해진 남편이 다시 자가 키트로 검사를 했다. 양성이었다. 양성 키트를 들고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 화요일 아침에 양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뭐지? 그냥 웃음밖에 안 난다. 남편은 코로나 이후로 2년 넘게 도시락을 싸서 혼자 가게에서 밥을 먹는다. 손님이 찾아오는 가게가 아니고 택배로 보내기 때문에 누굴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남편은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 갔다 온 것 외에 의심 가는 일이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장을 봐오기도 했지만 강의가 많아지면서 마트에 들르는 일도 없었다. 이쯤 되면 코로나가 작정하고 남편을 찾아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어제 아이와 나는 pcr검사를 받고 오늘 아침에 양성 문자를 받았다. 자가 키트 양성 이후 안방에서 나오지 않던 남편은 드디어 거실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막상 코로나 양성 문자를 받고 나는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에게 두통과 근육통, 기침이 있었지만 독감에 비하면 심하지 않았다. 약간의 열이 있긴 했지만 독감처럼 펄펄 끊지 않았다. 나도 오늘부터 인후통이 있긴 하지만 가벼운 몸살 기운 정도로 백신 맞을 때보다 아프지 않다.


막상 코로나 확진자가 되고 보니 내가 그동안 했던 모든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센터에서 물도 마시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다. 아이와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가서 아이스크림을 얹은 크로플이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도 나는 카페에 머물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얹은 크로플은 포장이 안 된다는 말에 다른 케이크만 사들고 와야 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이 했던 많은 노력들에도 작정하고 찾아오는 코로나는 막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철저하게 조심했음에도 걸렸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그저 운명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감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봄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있다. 일을 쉬는 것이 코로나보다 치명적인 자영업자 남편은 막상 당하고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이다. 전전긍긍하던 것들이 모두 내손을 벗어나고 보니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도 그런 마음이겠지. 가게일 걱정해 봐야 현관밖에도 못 나가는데 어쩌랴 싶은 마음이겠지. 하나 걸리는 것은 투표를 하러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투표용지를 보니 확진자도 투표할 수 있다고 하니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다만 앞으로 열흘 넘게 만나지 못하게 될 나의 사랑하는 길고양이 몽땅이가 많이 보고 싶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길고양이의 건강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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