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Apr 06. 2021

영화 '박화영'을 아직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있는 분에게 이 영화가 '킹덤'보다무서울 수있습니다.

-이 글은 영화 '박화영'에 대한 많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 '박화영'이라는 영화를 봤다. 제목이 낯설었는데 상을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2019 14회 대한민국 대학 영화제(연기상)

15회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신인음악감독상)

2018 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신인여우상)


18살 박화영은 고등학생이지만 학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박화영의 집에 친구들(?)은 매일 모여 라면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서 지낸다. 친구들은 화영을 '엄마'라고 부르는데 화영은 친구들이 잘못하면 대신 영재에게 맞는다. 화영의 단짝인 무명 연예인 미정은 일진인 영재의 여자 친구다. 화영은 미정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지만 미정은 자신을 위해 매번 화영을 이용한다.


마치 가출생 집단숙소 같은 화영의 집에서 그들은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업소 사장에게 돈을 뜯거나 원조교제를 미끼로 어른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을 이용해 그들은 쉽게 돈을 벌고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른다. 영재에게 세진이라는 다른 여자가 생기고 무리에서 밀려난 미정은 영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원조교제 쇼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화영은 미정을 구하기 위해 원조 교제남에게 강간당한다. 미정과 화영에게 화가 난 영재는 남자를 죽이게 되고, 미정은 화영에게 '엄마'니까 자기를 지켜달라고 한다. 화영은 영재와 미정을 보내고 경찰에 자수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화영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탓인지 끊임없이 자신을 엄마라고 한다. 친구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집을 내주고 대신 맞아주고 결국 살인죄까지 뒤집어쓴다. 화영은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보상으로 친구들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니들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화영은 친구들을 대신해서 영재를 만나러 가면서 항상 이렇게 허세를 부린다. 그때의 화영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린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영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 자신이 막 대해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악하게 군다. 선생님이나 경찰에게는 큰소리치면서 물어뜯고, 영재나 원조남에게는 짓밟힌다. 사실은 화영이 고개 숙여야 할 존재는 선생님이고 경찰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화영을 지켜줄 수 있는데 화영은 자꾸 위험한 사람들 앞에 자신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힘들었다. 매 씬이 욕이었고, 담배와 침과 충격적인 장면들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미정을 향한 화영의 모성에 가까운 우정도 나는 불편했다. 10대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공포 그 자체였다. 현실이 이 영화처럼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봤다. 이런 일이 사실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흔하지 않은 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많이 겪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아직도 두렵다. 아들이 이런 친구들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일까? 이런 바람이 터무니없는 바람일까? 잊을만하면 화영이 생각난다.


"니들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말하던 두려움에 떨리던 눈빛, 자신도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이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난 화영이 나는 가여웠다. 사실 감옥에 갈 화영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서 영재와 미정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옥에 간 화영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감옥에서도 '엄마'로 살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제발 다시 영재와 미정을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불편하고 거북스러운 이 영화를 아직 소화시키지 못했다. 너무 까끌거려서 삼키기도 힘들 것 같은 영화 '박화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을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