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을 하는 중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김혜진 작가님의 '딸에 대하여'를 읽고 모임을 가지던 중이었다. 작품 속에 딸은 대학에서 동성애에 대한 발언 때문에 부당 해고된 동료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는 중에 딸도 해고의 위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토론 중에 동료의 발언 때문에 해고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인 동료가 한 말이기 때문에 해고된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만약 이성애자가 같은 발언을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이때 한 분이 말했다. 딸이 강의하는 대학은 종교재단의 대학이니까 해고가 당연하다고. 강사가 대학의 종교적인 가치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순간 대학의 종교적인 가치관이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종교재단의 대학은 대학의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들을 입학시킬 때도, 강사나 교수를 채용할 때도 종교면접이라도 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대학은 왜 다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같은 의견만 나눌 거라면 굳이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교회나 사찰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다.
대학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자유롭고 깊이 있는 토론을 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을 위해 대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몇몇 분들이 그분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이야기했지만 그분은 대학의 종교적 가치관을 침해한 강사를 해고한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을 강조할 뿐이었다. 나는 순간 무서움을 느꼈다. 저분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이 강사에게 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심각한 폭력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다른 교수들과 강사들도 자유롭게 수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 수업내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다른 교수들에게도 폭력이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대학이 정한 교육만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다.
종교재단의 학교들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재단만 종교재단일 뿐 운영방식이 나 교육철학은 다른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아이가 6살에 처음으로 다닌 어린이집은 불교재단이었다. 입학하는 날만 스님 한분이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가셨다. 딱히 종교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린이집의 모든 교육은 일반 어린이집과 다르지 않았다.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종교를 강요하거나 종교적인 수업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 물론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럼 대학은 어떨까? 종교재단을 다닌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크게 다를까 싶다. 대학은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의 반발을 살게 뻔하다. 물론 재단의 종교를 믿는 학생들만 다닌다면 아무 반발도 없겠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강의 중에 한말 때문에 해고를 당한 상황이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그분의 말을 듣고 나는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 봤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톰 행크스는 에이즈에 걸려서 로폼에서 해고된다. 그런데 에이즈가 해고사유가 된다는 회사방침이 없었는지 일부러 실수하게 만들어서 해고한다. '딸에 대하여'에서도 대학은 동성애에 대한 발언 때문에 해고한다고 하지 않는다. 분명 대학의 방침에도 그런 조항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그 사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선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도 괜찮을 것처럼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폭력에 익숙해지고 부당한 일이나 폭력에 저항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권도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뉴스에서, 내 옆에서 일어난 일이 내 삶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같이 고민하고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