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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03. 2024

 그 여자

쉬는 시간이라 시끄러운 교실에서 혜영은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음 주부터 있을 학부모 상담일정을 작성해서 가정통신문으로 보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한참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가정통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아!”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와 함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고개를 든 혜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채를 잡은 아이와 머리채를 잡힌 아이의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야 니가 내 뒷따마 한 거 다 알고 있어. 니가 뭔데 남 뒷따마야.”

머리채를 잡은 아이가 말했다. 머리채를 잡힌 아이는 정말 그 아이의 흉을 본 것인지 별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도 아이의 몸은 뒤로 자꾸 기울어지고 아픈지 자신도 모르게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두 사람을 말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구경꾼처럼 서 있기만 했다. 머리채를 잡은 아이는 다른 반 아이였다. 게다가 초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진한 화장과 어두운 녹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또래 아이와 달라 보이게 했다. 그 기세에 다른 아이들은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듯했다. 머리채를 잡힌 아이는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야 재밌냐? 남의 교실에 와서 뭐 하냐?”

 염색머리를 비웃는 듯한 말투에는 망설이거나 겁먹은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그저 염색머리의 하는 꼴이 유치해서 한마디 한다는 투였다. 

 “뭐? 너 뭐냐? 죽을래?”

 “아니! 살 건데.”

 여전히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던 염색머리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머리채를 잡힌 아이는 외마디 짧은 비명만 지를 뿐 염색머리에게 잡힌 머리를 잡고 버틸 뿐이었다. 

 “뭐 하는 거야? 너는 왜 남의 반에 와서 행패야?”

 혜영이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친구에게 폭력을 쓰는 염색머리를 보면서 혜영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염색머리는 움켜쥔 머리채를 놓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은 머리채를 잡힌 아이가 아닌 은주를 향해 있었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은 것보다 은주가 자신을 더 쪽팔리게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너는 니네 교실로 가고 다들 자리에 앉아.”

 혜영의 말에 교실은 금방 정리되기 시작했다. 염색머리는 은주를 한번 더 노려보고는 교실을 나갔다. 혜영도 은주를 보고 있었다. 담임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은주는 눈에 띄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였다. 교과목 전체를 고루 잘하는 엄친아였다. 그런 은주가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서 피하는 염색머리에게 당차게 한방 먹인 것이다. 혜영은 은주가 신경 쓰이던 중이었다. 기영이 공개수업을 다녀간 뒤부터였다. 가르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은주는 나무랄 데 없는 아이였다. 반 아이들과 관계도 좋고, 혜영에게도 예의 있게 행동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게다가 얼굴도 눈에 띄게 예쁜 아이였다. 그런 은주가 용기 있게 나서자 반아이들은 은주를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혜영은 은주의 얼굴에 스쳐가는 기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기영과 은주는 많이 닮았다. 호감 가는 얼굴과 시원스러운 성격이 닮았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혜영은 작성했던 가정통신문을 학교 알림 앱에 올렸다. 그리고 프린트하기 위해 인쇄를 눌렀다. 요즘은 앱으로 알림을 보내지만 상담 같은 학부모의 참여가 필요한 안내문은 인쇄물로 한번 더 보냈다. 그래도 참여율이 높지 않다. 초등저학년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학부모들도 고학년이 되면 신경을 덜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참여율을 높이려고 혜영은 신경을 썼다. 

 “다음주가 상담주간이에요. 부모님들께 안내문 보여드리고 상담 가능한 날과 시간을 체크해서 제출하세요.”

 혜영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은주에게 가는 것을 느꼈다. 은주의 부모님이, 누구든 꼭 상담에 참여해 주기를 바라면서.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가 자리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 선생이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다. 

 “황쌤 이거.”

 혜영은 말없이 봉투를 열었다. 청첩장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김 선생과 그녀의 예비남편의 미소 지은 얼굴을 그려서 김 선생이 직접 만든 청첩장이었다. 

 “김쌤 축하해요! 청첩장 이쁘다.”

 혜영은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동안 김 선생에게 결혼 다시 생각해 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는 축하해 주는 것만 남았다. 혜영은 진심으로 김 선생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다. 청첩장을 가방에 넣고 있는 혜영에게 김 선생이 말했다. 

 “황쌤 그때 같이 봤던 드레스 진짜 괜찮았어요? 나 드레스 잘못 고른 것 같애.”

 “내 눈에는 괜찮았어요. 그래도  미련 남지 않게 더 고민해 봐요.”

 혜영은 드레스가 아니라 신랑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 앞에서는 모두가 제대로 생각하지를 못하는지 혜영은 알 수가 없다. 혜영은 두 사람이 반드시 이혼할 것 같다는 자기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결혼준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 선생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결혼은 별로지만 김 선생이 입은 드레스만큼은 예쁘다고, 그래서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혜영의 바람대로 은주의 엄마가 상담을 한다고 했다. 혜영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상담을 기다렸다. 기영의 아내, 은주의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기영은 왜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까? 그런 상념에 잠긴 채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은주의 엄마는 시간에 맞춰 교실문을 노크했다. 혜영은 문을 열었다. 기영의 아내, 은주의 엄마 지현이 인사를 하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긴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였다. 흐트러짐 없이 빗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다. 

 “아직 학기 초라 상담할 내용보다는 부모님께 은주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은주는 어떤 아이인가요?”

 “은주는 그냥 평범한 6학년이죠 뭐. 요즘은 조금 까칠해진 것 같기도 하고.”

 “지난 공개수업에는 아버님이 오셨던데 아버님이 많이 가정적인 분이신가 봐요.”

 “그런 편이에요. 외동딸이라 그런지 더 애지중지하는 것 같애요.”

 “차 드세요.”

 혜영은 미리 준비한 차를 지현에게 권했다. 말을 끊고 지현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혜영은 지현의 손을 보고 있었다. 기영의 것과 같은 반지가 지현의 손에도 있었다. 결혼반지가 분명하다고 혜영은 생각했다. 아내의 손에 끼워준 결혼반지를 다른 여자에게 끼워준 기영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도대체 기영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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