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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28. 2023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지인과 글 쓰는 만남을 갖기로 하고 오늘은 첫날이었다. 글 쓰는 만남이라고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이 많지만 넓어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물었다.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대답하기까지 짧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나를 드러내지 않고 답해야 하나 고민이 된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에게 굳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별로 없어요."

내 말에 그분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솔직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가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신 거예요?"

 내 물음에 그분이 대답했다. 최근에 오래된 친구로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고. 평소 외향적인 성격에 활동적인 친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그래서 혹시 다른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이미 충격을 받은 그분께 내가 충격 하나를 더 얹은 꼴이 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두 사람의 대답이 충격이에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요? 정말요?"

이번에는 내가 충격을 받을 차례였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역시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힘들 때 죽고 싶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그분은 그런 순간적인 감정도 자신이 기억하기에는 없었다고 한다. 부러웠다. 내가 평소 그분에게 느꼈던 단단함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스스로 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단단함이 그분에게서 후광처럼 빛을 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면, 얼마나 삶을 사랑하면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한동안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왜 자살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 마음인지 이야기했다.


지금처럼 겨울비가 그치고 안개에 싸인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도 내가 왜 죽음을 생각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처럼 쭉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이렇게나 강한데도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마치 키우던 화분에서 마른 잎이 한 장 툭하고 떨어지는 것처럼 이유 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나는 오래오래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불쑥 찾아오는 이런 감정이 너무 자주 찾아와서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아이를 낳고 일 년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나는 보고 있기만 해도 눈이 부시게 예쁜 아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물론 육아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더 컸기 때문에 매일이 좋았던 날이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운동을 하려고 실내자전거를 베란다에 두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을 틈타 운동을 하던 나는 며칠 만에 운동을 더 할 수 없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풍경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9층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깥 풍경은 정신이 아찔하게 높았다. 나는 그때 추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서웠던 것이 아니다. 내가 순간순간 뛰어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아이 얼굴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는데 내 마음 어디에 그런 마음이 남아 있었을까?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지금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지금이 딱 좋다고 느끼면서 사는데도 순간순간 머릿속으로 번쩍이듯 스치는 생각에 진저리를 칠 때가 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고 오래 살 것이다. 이런 내 마음속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전해 들은 그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이다. 자살률 세계 1위 나라에서 자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죽음만큼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고귀한 죽음이고 어떤 죽음은 하찮은 죽음이라는 말도 하지만 죽는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어떻게든 찾아올 죽음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말을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하려고 한다. 삶이 주는 기쁨을 매일 떠올리고 있다. 어제 일요일 오후에 바라본 하늘에서 봤던 예쁜 구름 같은 것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안개가 걷히고 카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면서 나는 오늘 대화가 참 좋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쏟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마치 비워낸 것처럼 후련했다. 최근 이렇게 솔직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분이 내게 늘 그런 존재이다.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주는 그런 분이다. 그분이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완전히 그쳤다. 비가 온 후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날씨가 춥지 않았다. 겨울이지만 마음이 뜨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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