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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6. 2022

불편하지만 편의점

아들이 개학한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아들의 학교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지만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바꾸지 않고 등교 수업을 고집하고 있다. 등교 수업이 길어지면서 나의 점심 메뉴가 심각한 가정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들이 방학이거나 원격수업을 할 때는 아들과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신경 써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혼자 먹을 한 끼를 위해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사과나 삶은 계란으로 간단하게 먹게 되었다. 그도 아니면 아들 없을 때 마음 놓고 라면이나 끓여먹자 식으로 한 끼를 때우고 있다.


점심 식사 후에 일까지 해야 하는 날이면 이것저것 신경 써서 먹기에 시간도 부족하다. 목요일이었다. 그날은 아침에 비대면 독서회가 있었다. 다른 독서회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회였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마음에 쌓인 상처를 풀어놓는 상담소 같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목요일의 독서회는 달랐다. 돈을 받고 하는 강좌였다. 항상 독서회를 해왔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힘들어서 2시간의 독서회가 끝나고 나면 몸이 텅 빈 것처럼 허기가 지고, 영혼까지 털린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점심을 먹을 생각도 못하고 앉아 있는데 카톡이 왔다. 남편이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 사진을 보내왔다. 최근 남편의 독서회에서 선정한 책이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이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도서관마다 빌리기도 힘들 만큼 대출예약까지 꽉 찬 작품이다. 나도 최근에 독서회가 아닌 휴식을 위해 읽은 책이기도 했다. 출근을 하던 남편이 편의점을 보자 충동적으로 도시락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갑자기 편의점 도시락이 먹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면서 옥수수수염차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장 궁금하고 끌리는 것은 참참참(참치김밥, 참깨라면, 참이슬)이지만 참치김밥은 가장 싫어하는 김밥이다. 참깨라면은 먹어본 적이 없는 라면이다. 게다가 참이슬은 스무 살 이후에 마셔본 적이 없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편의점에 산해진미 도시락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산 것과 같은 도시락과 옥수수수염차라도 사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편의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한참을 걸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을 이용하지 않는다. 손님이 많아서 코로나 지원금 제한 매장이 된 적도 있는 이 편의점의 사장님은 어른에게는 친절하고 아이들에게는 불친절하다. 내 아이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내가 함께 있을 때는 친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 편의점에 갔을 때 다른 아이들에게 차갑게, 재촉하듯, 따지듯 대하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아이에게도 저렇게 했겠구나 하는 생각, 어리지만 고객인데 친절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불친절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편의점에서 겪는 불친절에 대해 아파트 카페에도 자주 글이 올라올 지경이다. 하지만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어서 학생들은 이 편의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무지 편의점 매출이 줄 것 같지가 않다. 나도 예전에는 이 편의점을 일주일에 몇 번씩 이용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멀어도 다른 편의점을 찾아간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이 편의점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남편이 말한 도시락을 사 왔다. 옥수수수염차도 한병 사봤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산 것도, 옥수수수염차를 사 본 것도 처음이다. 다시 20분 걸어서 집으로 왔다.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돌리고 설명서대로 비벼먹었다. 남편의 말대로 기대한 것보다 맛이 있었다. 옥수수수염차도 한잔 따라 마셨다. 고소한 맛이다. 편의점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고 할 때마다 편의점 음식을 왜 사 먹지 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엄마 아빠에게 편의점 도시락의 반전 매력에 대해 들은 아들은 삼각김밥이 아닌 도시락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위해 오늘 다 같이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우산을 쓰고 동네 산책을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아들과 도시락을 고르는데 세상에 없는 게 없다. 김밥과 순대, 족발과 딸기 등등. 동네에 편의점 하나만 있어도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겠다. 나는 천천히 편의점을 돌면서 냉장고도 들여다 보고 채소와 과일 코너도 돌아보았다. 드라마 '질투'이후로 편의점에 이렇게 관심을 보인 것은 처음이다.  다음에 오면 사고 싶은 것들을 찜해 두기도 했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편의점이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매일 지나치던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나는 편의점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1+1이나 2+1 제품들을 골라서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슈퍼에서 과자 살 때 괜히 손해 본 것 같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의점과 내가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기 위해서는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 한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야 하고 한참 걸어야 한다. 요즘은 편의점도 배달이 된다고는 하지만 배달을 시킬 만큼 많이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귀찮아도 걸어가야 한다. 집 앞 편의점을 이용하면 편하겠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은 편하게, 몸은 불편하게 가야 하는 곳이 우리 동네 편의점이다. 책 제목처럼 불편한 편의점이 맞다. 매일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을 정도로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 식구 한 끼 재미있게 먹는 점심으로 딱이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편의점이다.


밥 위에 계란 프라이까지 정말 정성이 느껴지는 도시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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