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예약해 둔 절임배추가 왔다. 나는 오늘이 토요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김장이 끝나서 갓 담은 김치에 수육을 싸 먹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장은 마치 숙제 같다. 안 하면 계속 머릿속이 김장 김장하고 울린다. 휘리릭 해 버리면 되는데 또 막상 하려니 하기 싫어서 꾀가 났다. 절임배추를 예약해두면 나는 도망갈 데가 없다. 일단 도착한 배추를 해결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하게 된다. 금요일 밤에 미리 육수와 찹쌀풀을 끓여두었다.
남편은 요즘 본업이 아닌 다른 일로 바쁘다. 아들은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다. 올해 김장은 나 혼자 해야 했다. 쪽파도 까고, 생강도 까고... 어쩌고 저쩌고 김장 준비를 하는 동안 뭔가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남편이 무채는 썰어줘서 조금 나았다. 정신없이 하다가 쪽파를 안 넣을뻔한 사고를 겨우 면하고 김장이 완성됐다. 딱 우리 세 식구 일 년 치 김치 30킬로와 무 섞박지까지. 올해는 혼자 하려니 힘들어서 갓김치도 알타리도 일단 생략했다. 다른 김치는 12월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김장의 맛은 수육이다. 나는 금요일 밤부터 고대하던 김장의 맛을 보았다. 물 없이 채소로만 삶은 수육은 기름기가 적어서 담백했다. 김치가 아주 맛있다며 아들과 남편도 고기를 김치에 싸서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들이 엄마 혼자만 하는 것 같다고 힘들겠다며 어깨를 주물러줬다. 캬~이것이 김장이 맛이구나. 애교 없는 아들에게 자진 마사지를 받게 하는 김장의 맛은 맵지 않고 달았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김장할 때마다 느낀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김치에 고기를 싸서 먹는데 순간 엄마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아들이 돌이 되는 해부터 김장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십 년이 넘었다. 김장을 할 때마다 나는 엄마가 생각이 난다. 어릴 때 엄마는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했다. 배추밭이 산자락 밑에 침엽수 옆에 있었다. 배추 속 사이사이 침엽수 잎이 박혀있어서 여러 번 씻어도 계속 잎이 나왔다. 엄마는 장독대 옆 수돗가에서 배추를 씻고 절이고 또 씻었다. 내가 김장을 시작한 첫해에 겁도 없이 배추를 사서 절였다. 정말 힘들었다. 김장에서 배추를 절이는 것이 아마 김장의 전부가 아닐까 싶을 만큼 손이 많이 가고 힘들었다. 엄마는 몇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씻고 또 씻어서 김장을 했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다. 철없는 나는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지 않았다. 그게 김장을 할 때마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그때 김장을 하고 나면 어깻죽지가 빠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장을 하면서 어깻죽지가 빠지는 것처럼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서 걷기도 앉기도 힘든 것, 그게 바로 김장이 맛이다. 김장을 직접 담그면서 나는 한 조각의 김치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김장을 하기 위해 고춧가루부터 마늘 한쪽까지 신경 쓴 만큼 돈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는 절임배추로도 김장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엄마의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 사랑 듬뿍 받은 우거지 된장국! 무청을 데쳐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는데도 무청만 더 사서 얼려두고 싶다.
커다란 무만큼 실했던 무청으로 우거지 된장국을 끓였다. 겨울 무라 달았던 무만큼 우거지 된장국도 맛났다. 아들이 엄지 척을 해주면서 한 그릇 더 주세요 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럴 때 김장의 피로가 싹 가신다. 아들은 수육보다 김치보다 우거지 된장국이 더 맛있다며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남편은 김치도 우거지 된장국도 맛있다고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을 칭찬으로 때웠다. 이렇게 가족과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먹는 겨울밤에 몸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뜨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