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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19. 2024

남편이 열무김치를 사 왔다.

 퇴근하는 남편의 손에 검정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간식거리를 사 오는가 했더니 열무김치였다. 동네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다.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맛집이다. 손으로 직접 만든 면에 별로 들어간 것 없는 간단한 재료지만 국물맛이 정말 끝내준다. 그런데 그 식당의 최고메뉴는 칼국수가 아니라 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이다. 다른 반찬은  없고 열무김치가 유일한 반찬이다. 칼국수와 함께 열무김치를 넉넉하게 주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열무김치를 더 부탁해서 먹는다. 다시 주는 열무김치의 양도 처음과 거의 같다. 사장님의 인심도 넉넉해서 열무김치를 더 달라는 손님들의 요구에도 언제나 흔쾌히 내어주신다. 문제의 그 열무김치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따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지인은 매해 여름이면 그 김치를 사서 열무국수를 해 먹는다고 했다.


바로 그 열무김치를 남편이 사 온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먹는 유명 열무김치가 반갑기도 했지만 속으로 많이 정말 많이 놀랐다. 열무김치 하나로 놀랄 일이 뭐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편이 그 김치를 유별나게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그 집 김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냥 나오는 반찬이니까 먹는 거지 사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뭐 사 올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김치를 그냥 사 올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반찬가게나 마트에서 사 온 반찬이나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혼 때 내가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을 남편은 한 젓가락 먹어보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반찬가게에 가본 적이 없다. 마트에서 조리된 식품을 산 적도 거의 없었다. 남편은 내가 조리된 음식을 사서 몰래 데워줘도 한 번만 먹어보면 그 음식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그래서 그 후로는 김치를 포함 반찬가게 음식을 절대 사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제 손으로 열무김치를 사 온 것이다. 순간 나는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열무김치를 만든다. 어느 날은 열무물김치를, 어느 날은 빨간 양념을 한 열무김치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보통은 장마가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만든다.  그리고는 보리밥을 지어서 쓱쓱 비벼먹었다. 그러면 여름이 입 속으로 맛있게 들어왔다. 나에게 여름은 열무보리비빔밥에 취하는 계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여름이 훅 들어와서 무르익을 때까지 나는 열무김치를 만들지 않았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너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래서 계절김치와 음식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봄에는 마늘쫑 장아찌를 만들어서 일 년을 먹었는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만들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 외에도 각종 장아찌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서 고기 먹을 때 함께 먹었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니 기다리다 못한 남편이 평소 그냥 반찬으로 나오니까 먹는다는 식당의 열무김치를 사 온 것이다.


열무김치를 만들지 않았을 뿐 틈틈이 오이김치나 부추무침을 해서 김장김치에 질린 식탁에 놓곤 했는데도 남편은 왜 열무김치를 사 왔을까?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괜찮아도 밖에서 사 온 반찬은 안 먹던 사람인데. 요즘 새삼 시간이 무서워졌다. 절대 안 바뀔 것 같은 성격도 바꿀 수 있는 시간의 힘이 무섭다. 남편과 산 시간이 20년이다. 남편이 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여름을 싫어했던 남편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서 추운 겨울을 싫어하게 됐다. 누우면 바로 잠들던 남편은 요즘 잠에 예민해졌다. 암막커튼이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 예전에는 내가 잠자리가 예민했는데 이제 남편은 작은 빛도, 작은 소리도 잠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한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쓸쓸해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2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절대 사지 않았을, 아니 내가 사 와도 먹지 않았을 김치를 손수 사 오는 것이다. 이제는 아내인 나에게 열무김치 만들어 달라고 말하지 않는 쓸쓸함이다. 서로 배려하는 것은 중요하고 좋은 것인데 그 배려가 서운하기도 하고 미안하다. 남편이 사 온 열무김치가 떨어지기 전에 열무를 사 와야겠다. 열무김치 맛있게 만들어서 보리밥에 비벼먹어야겠다. 나이가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싱그러운 여름 열무김치 맛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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