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평일 저녁에 외식하는 일이 거의 없는 우리는 조금은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아들과 내가 도착한 곳은 집 근처 중국집이었다. 짬뽕국물이 맑고 얼큰해서 중국음식 먹을 때 자주 가는 곳이었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짜장면 세 개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숙하고 초조한 기운이 우리 세 사람을 감돌고 있었다. 이 짜장면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 맛이 있을까 하는 걱정에 시간이 지루하게 흘러갔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짜장면이 나왔다. 정갈하고 기름진 검은색 소스에 잠긴 맛깔스러운 노란색 면발과 다소곳하게 올려진 오이가 새침스럽기도 했다. 남편과 아이는 서둘러 짜장면을 비벼 급하게 면치기를 시작했다. 마치 최소 3일을 굶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정성을 다해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길고 찰진 면에 소스가 어우러지는 과정을 음미하면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리고 단무지 한 조각을 짜장면에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달고 짧쪼름한 맛이 입안에 번져갔다. 입속으로 많은 기억과 이야기들이 밀려들어왔다.
우리가 이렇게나 비장하게 짜장면을 먹기 위해 중국집으로 간 것은 '짜장면 랩소디'라는 다큐 때문이었다. 백종원 님이 중국 식당에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짜장면의 역사와 화교인들의 삶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저께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세 가족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늦은 시간에 짜장면을 먹을 수도 없고, 운동하고 씻고 나온 터라 허기가 밀려왔다. 집에는 짜파게티가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짜파게티가 짜장면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나라를 구하는 독립운동가처럼 비장하게 내일을 도모했다. 내일 저녁에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자!
남편과 나는 젓가락이 휘어지게 짜장면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우리는 어제 우리가 봤던 영상 속 짜장면과 짜장면을 요리하는 요리사님들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한때는 80원이었다는 짜장면 한 그릇에 그렇게나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짜장면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즐거운 짜장면 한 그릇의 이야기.
내가 짜장면, 아니 짜장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교회에서 점심으로 짜장밥이 나왔는데 그게 내가 접한 짜장 소스의 처음이었다. 검고 어둡고 맛없어 보이는 첫인상에 나는 숟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짜장소스를 들어 하얀 밥에 비벼먹었다. 거의 짜장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양이라 짜장밥이라고 하기도 억지스러운 수준이었다. 내가 진짜 짜장면을 먹어본 것은 대학교 때였다. 그전에도 중국집에 간 적은 있었지만 나는 주로 짬뽕 파였다. 나에게 짜장면은 마치 구불거리는 거대한 연체동물 한 그릇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큰하고 시원한 짬뽕을 먹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짜장면을 먹으러 자주 갔다. 그때는 돈이 부족해서 양을 많이 주는 곳에서 한 그릇 시켜서 둘이 먹을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기자기한 이야기인가. 지금은 과식하면 당수치 올라갈까 봐 한 그릇 시키거나 적게 먹는데 그때는 돈이 부족해서 알콩달콩 한 그릇으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원래는 짬뽕파인 나는 짜장면이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하지만 짬뽕을 싫어했던 남편을 위해 기꺼이 짜장면을 먹어야 했다.
"우리 가족이 삼짜장을 먹은 것은 처음이네."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예전에 나는 항상 짬뽕, 남편과 아들은 짜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에 남편과 아들은 짬뽕, 나는 짜장이었다. 함께 한 시간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식성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집에서 같은 메뉴를 세 개 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미디어의 힘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아무도 망설이지 않고 짜장면을 시킨 것이다. 순식간에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운 우리와 달리 아들은 짜장면을 천천히 음미하듯 먹었다. 마치 어떤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짜장면을 면까지 모두 비우고 식당을 나섰다. 뼛속까지 배가 불렀다. 짜장면 랩소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