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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3. 2022

사과 세 조각을 싸 달라는 아이

일을 마치고 센터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사회 복지사분께서 뒤따라 나오셨다. 항상 나 혼자 집에 가는데 오늘은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주차장까지 짧은 거리를 걸었다.

"@@가 간식 안 먹었으니까 사과 싸 달라는 거야. 아휴 짠해서."

"예? 정말요?"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들었나 했다. 내가 일하는 아독복지센터에서 아이들은 오후 3시쯤 간식을 먹고 5시쯤 저녁을 먹는다. @@는 거의 매일 저녁 5시 30분쯤 센터에 오는 것 같았다. 그때는 간식도 저녁도 모두 치운 상태이다. 그러면 사회 복지사분께서 다른 간식을 챙겨주는 것 같았다. 봉지 카스텔라에 우유나 주스를 챙겨주거나 과자 같은 간식이었다. 그 아이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거나 돌아갈 준비를 하는 센터에서 혼자 앉아 간식을 먹곤 했다.


오늘도 센터에서는 그 아이에게 간식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오늘 간식이 사과였다는 말을 듣고 오늘 안 먹은 사과를 싸가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과는 다 먹고 치웠는데 어떡해. 줄 수가 없잖아. 센터장님한테 말해서 겨우 한 개 챙겨줬어. 사과 가져가는 것 보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

"그러게요. 요즘 아이 같지 않아서 짠하네요."

"집이 요 앞이긴 한데 그래도 자른 사과 조각을 어떻게 싸주겠냐고. 에고."

이런 이야기 끝에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했다. 센터가 끝날 무렵에야 와서 간식만 먹고 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처음부터 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내가 센터에 처음 온 날 그 아이는 울었다. 10살이나 11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모습이 짠했다. 다른 아이가 줄넘기를 하다가 줄이 목을 살짝 스친 모양이었다. @@는 울다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달래고 자기편을 들어주고 나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은 마치 다섯 살 아이처럼 어리게 보였다.


책이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떤 위안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아이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와 나는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사과를 들고 간 아이의 저녁 풍경을 생각했다. 아이의 집에 사과 한 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상상을 했다. 엄마의 손에서 사과가 깎아지고 접시에 담겨 가족이 도란도란 먹고 있었으면 좋겠다. 꼭 그런 그림이길 바랐다.


센터에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의 일이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고 면접관이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사실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독서지도 선생님으로 면접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동복지센터가 어떤 곳이라는 배경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냥 아이들이 있는 곳,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방과 후를 보내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센터 아이들의 반 정도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 정도는 면접관이 말한 취약계층의 아이들이다. '나는 이곳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말할 곳이 없고 소통할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책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고 위로받기를 원한다.' 이런 식의 답을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취약계층이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한 달 반 동안 일하면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은 외로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건 센터에 있는 아이들만이 아닐 것이다. 센터에 오지 않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학원이나 공부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는 개사과에 사과 하나를 이용했다. 누군가는 남은 사과를 싸 달라고 했다. 2022년에 사과 세 조각을 싸 달라고 하는 10살 남자아이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서걱서걱거린다. 그 아이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눈빛이 따뜻하다. 사과 하나 함부로 쓰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의 품에서는 귀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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