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러 갔다. 아이가 등교하고 난 후에 집을 나섰다. 엄마가 사는 부천까지 안 막히면 한 시간 삼십 분이다. 집 앞에 나와 있으라고 미리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집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일흔을 넘긴 엄마의 모습은 아이처럼 작고 애처로웠다.
엄마와 함께 미리 검색해 둔 식당으로 갔다. 엄마는 십분 거리의 식당에 가는 내내 밥 한 끼 먹으로 어디까지 가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엄마는 늘 이렇다. 별로 식탐이 없는 엄마는 먹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을 혐오하다. 맛있는 거 먹으러 차 타고 가는 일 자체를 싫어한다. 그래도 자식들이 사 준다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기는 하지만 음식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엄마랑 밥 먹을 때 식당 고르기가 쉽지 않다.
엄마가 한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번 한정식 집이었는데 오늘은 한우 전문점으로 잡았다. 며칠 전 통화에서 산책길에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말에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내가 고집을 피웠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가 스스로 고기를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고깃집이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후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일찍 서두른 덕분에 식당에는 우리 모녀가 첫 손님이었다. 정갈하고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고기를 시키고 밑반찬을 먹어보던 엄마가 반찬이 다 맛있다고 했다.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다고 좋아했다. 그래 봐야 열 점도 안 먹는 엄마다. 그런 엄마가 한우 된장찌개 맛을 보고는 정말 맛있다며 싹싹 비웠다. 뿌듯했다. 엄마가 외식해서 맛있다고 하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된장찌개와 알타리 장아찌까지 엄마 입맛에 딱이라고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카페 가서 커피 한잔 하자고 했더니 엄마가 눈을 흘긴다. 무슨 카페냐고 집에 가서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카페를 향해 차를 몰았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밥은 집에서 간단하게, 외식이라고 해도 집 앞에서 간단하게 칼국수나 먹자고 했다. 커피는 무슨, 집에 커피 있다고 했다. 다른 형제들은 엄마의 이런 반응에 평소답지 않게 말을 잘 듣고 집으로 가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엄마가 싫다고 해도 무조건 비싸고 맛있는 집으로 예약한다. 카페는 무슨 이라고 말해도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엄마를 데려간다. 이럴 때 무조건 엄마 말 잘 들으면 엄마는 평생 비싼 한우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지 못할 것이 뻔하다.
요즘 부천에서 핫하다는 카페는 정말 명성답게 분위기도 좋고 예쁜 소품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주문하는데도 줄을 서고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고마 집에 가자고 할까 봐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핸드드립 커피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아인슈패너 한잔을 주문했다. 평소에는 보통 엄마를 위해서 라테나 마끼아또를 주문하지만 이번에는 내 취향대로 주문하기로 했다. 어차피 엄마는 라테도 마끼아또도 믹스커피랑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
커피잔에 가득 담긴 크림이 넘칠까 봐 조심조심 걷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커피 마시고 싶냐고. 나 같으면 치사해서 안 마시고 말겠다고. 역시 엄마다. 엄마는 참으로 식탐이라고는 없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아인슈패너를 맛 본 엄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연거푸 커피를 들이켠다. 내가 커피를 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엄마는 아인슈패너 한잔을 다 마시고는 아 개운하다. 이런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금세 다 마셨다고. 세상에 엄마의 커피 취향이 아인슈패너였다니. 엄마에게 앞으로 자주 마시러 오자고 했더니 됐다. 한번 마셨으면 됐지.라고 한다. 피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엄마는 괜히 저런다. 아까 커피 사진 요래조래 몇 장을 찍는 거 다 봤는데. 분명 이모들한테 엄청 자랑할 거면서.
오랜만에 엄마와 달콤한 데이트였다. 맨날 집 앞에서 삼겹살 먹자던 엄마는 알고 봤더니 한우가 입에 맞았다. 집에서 믹스커피 마시면 된다던 엄마의 커피 취향은 아인슈패너였다. 앞으로 검색 열심히 해야겠다. 엄마랑 더 좋은 카페에서 아인슈패너 많이 마셔야겠다. 자식들 아니면 스스로는 한잔에 만원 가까운 커피를 사서 마시지 못할 엄마를 위해서 더 열심히 엄마랑 놀아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아이처럼 못 이기는 척 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오는 엄마가 귀엽고, 커피 사진을 찍는 엄마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엄마가 지금보다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걸을 때 다리가 아프다고 침 맞으러 다니는 엄마, 시력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눈이 침침하다는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열심히 엄마랑 놀아야겠다. 귀여운 엄마 커피 사진 더 많이 찍으라고 여기저기 많이 다녀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뿌듯한데 이상하게 목구멍에서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이상했다. 왜 눈물이 눈에서 안 나오고 목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