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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1. 2024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익숙한 길이 보인다. 오늘은 주차할 자리가 있어야 할텐데 괜한 걱정에 아침부터 나를 괴롭히던 더 큰 고민은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번에 주차했던 임대라고 써 붙인 상가앞에는 세 대의 차가 비좁게 세워져 있다. 차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세울만한 곳에는 차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번처럼 차 세웠다고 할아버지한테 손가락 지시를 받고 싶지 않아서 비어있는 빌라 앞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찌어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모임 장소 건물 앞에서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망설이지만 결국 또 문을 열고 말았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화장실 방향제인지도 모르고 왜 매번 이 향기가 좋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Hi. nice meet you!"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들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나는 수줍게 하이!라고 인사를 한다. 내가 제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들의 환영에도 나는 잔뜩 위축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야기하고 웃고 공감하는 말들이 오고간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여기는 영어 독서모임이다. 영어원서를 읽고 영어로 프리토킹하는 모임. 모두들 영어능력자들이라 진짜 영어프리토킹하는 모임이다. 인사 후로 나는 머리 위로 안개처럼 퍼지는 알파벳의 한 조각이라도 잡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말을 해석하려고 내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내가 해석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이미 영어로 쏟아지는 말들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나는 흐르는 영어강물에 한쪽 발을 담그고 고민에 빠진다. 이 문장은 이미 틀렸어. 다음 말을 들어보자. 아니야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영어로 나누는 대화는 흐르고 또 흐른다.


내가 이 모임에 들어오기로 한 것은 두달 전쯤의 일이다. 당근을 전혀 사용하지 않던 내가 우연히 당근에 가입하고 한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영어원서 읽기'라는 말에 끌려서 신청글을 남긴 것이 시작이었다. 첫 영어도서는 존 스타인벡의 '진주'이다. 첫 챕터를 읽으면서 나는 이 모임에 나가면 안된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인사를 나누고 책을 선정하는 첫 모임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어서 왜 웃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뛰어난 영어 실력에 놀랐다.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외국인인 다니엘이나 영국에서 오래 살았던 싸미,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영은 그렇다고 치자. 계속 한국에서 살았다는 스텔라와 오거릿까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어보였다. 나는 그때 직감했다. 나는 이 모임에서 아메바를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을.


챕터 5. 진주가 가지고 올 불행을 두려워한 후아나는 진주를 가지고 해변으로 간다. 자기에게 찾아온 희망을 버리는 후아나에게 화가 난 키노는 동물처럼 변해서 후아나를 때리고, 진주를 빼앗으러 온 누군가를 죽이기까지 한다. 챕터 5의 내용은 아주 극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작품 속의 키노의 행동, 폭행 당하고도 진주를 다시 키노에게 돌려준 후아나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영어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들었다. 같은 공간이지만 나는 모임에 모인 사람들과 다른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지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나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이 모임에 계속 나와도 괜찮은지. 그것은 나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이 모임에 나와도 되는지, 이제 더 이상 이 문을 열고 들어올때 심호흡 없이 들어올 수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 모임에 나오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좋고, 조금씩 성장하는 내가 뿌듯해서 나는 매주 용기를 내 볼 생각이다. 첫 모임에 스텔라가 나에게 말했다. 이 모임에 나온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그녀의 말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성장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다음 모임이 기대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모임에 나오기 위해 나는 떨리고 긴장되고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이 모임을 멈출 마음이 없다. 한번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일주일에 한번 무거운 이 곳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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