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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집 이모

by 써니

마을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여자 얘기로 며칠째 시끄러웠다. 어른들은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이기만 하면 그 여자에 대한 쑥덕거렸다. 그 여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들의 시선과 호기심이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보통은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들의 흉내를 냈다. 그 여자는 마을에 들어온 희귀한 돌멩이처럼 조용했다. 말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어른이든 어린 아이이든 누구에게나 인사를 했다. 조용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동네 사람들하고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인사에 대꾸를 하지 못하고 얼굴만 뻔히 쳐다보고 지나쳐갔다. 사람들은 곁을 주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마음 한편은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그녀를 더 이방인으로 만든 것은 그녀가 사는 집이었다. 한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이십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에서 도랑과 논을 지나 길가에 외따로 그녀의 집이 있었다. 그녀가 마을로 건너오지 않는 한은 서로가 딴 마을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거리였다. 나는 그녀가 왜 그 집에 갑자기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집은 바로 우리 할아버지가 가진 몇 채의 집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어와 살기 전까지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일 년에 몇 번 엄마가 청소를 하거나 돌보긴 했지만 빈집이라 그 앞을 지나가기도 무서운 곳이었다. 그 집 바로 앞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밤이면 그 버드나무 밑에 도깨비가 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홀린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밤에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도깨비 들린 버드나무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그 집에 살면서도 언제나 조용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그녀에 대한 마을의 호기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농사를 지어서 사는 사람들에게 계절마다 찾아오는 농사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어서인지 집안 제사나 어른들 생신에는 우리 집으로 건너와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어른들은 아무도 나에게 그녀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었더니 버드나무집 이모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버드나무집 이모라고 불렀다. 사실은 그렇게 부를 일이 많지는 않아서 어른들한테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 정도를 할 때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버드나무집 이모만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느긋하게 집 근처를 산책하거나 동네에 하루 두 번 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오기도 했다. 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처럼 이모도 할 일없이 들로 산으로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 같았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 겨우 나를 낳은 이후로 엄마는 동생을 갖지 못했다. 마을에 있는 아이들은 농사일을 거든다고 어른들처럼 바빴다. 집에서 나랑 놀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는 도랑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구경하러 다녔다. 찔레순을 꺾어 먹으면서 나뭇가지로 길에 핀 꽃을 건드리면서 노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심심한 줄을 몰랐다. 매일 달라지는 나무와 논밭풍경에 마음을 뺏겨 산으로 들로 다니거나 묏등에 누워 구름구경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마 이모도 그런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모와 마주치는 날이 많았다.


마을이 모내기로 바쁜 때였다. 나는 바가지 하나를 들고 밭으로 갔다. 뽕나무에 오디가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거미줄을 떼어내면서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엄마는 오디를 좋아하는데 하필이면 일 년 중 가장 바쁜 철에 오디가 익어서 한가하게 먹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바가지에 한가득 오디를 따갈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였지만 어쩐 일인지 바가지가 채워지지 않았다. 손에 까만 물이 들도록 오디를 따서 바가지가 아니라 내 입으로 가져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초여름의 더위에 지친 나는 바닥에 겨우 오디가 담긴 바가지를 들고 밭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도랑을 보자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여름 더위가 가실 만큼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작은 벌레들이 발등으로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기서 뭐 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버드나무집 이모였다. 남들은 모심느라 바쁠 시간에 이모도 나처럼 한가롭게 도랑에 발 담그러 온 모양이었다.

“더워서요.”

이모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워서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졌다.

“나도 더워서 발 담그려고 왔는데. 옆에 앉아도 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는 까만 구두를 벗어서 돌 위에 놓았다. 그리고 하얀 양말을 벗어 구두위에 올려놓고 내 옆에 나란히 앉아 물에 발을 담갔다.

“아 시원하다. 물이 제법 차네.”

그렇게 말하면서 이모는 손으로 물을 튕겼다. 물방물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을 내면서 떨어졌다. 그 모습이 예뻤는지 이모는 계속해서 물을 튕겼다. 나도 이모를 따라 손에 물을 담아 공중에 뿌렸다. 마치 또르르 소리를 낼 것처럼 물이 공중에서 돌다가 물 위로 떨어졌다. 보석처럼 예쁘다고 생각했다.

“수연아 이거 오디 맞지?”

갑자기 이모가 내 바가지를 보고 말했다. 나는 당연한걸 왜 묻나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여서 그렇다고 해줬다.

“오디가 잘 익었네.”

이모는 오디가 귀한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중에 크고 까맣게 잘 익은 것으로 몇 개를 골라 이모 손에 놓아주었다. 까맣게 물든 내 손가락에 새로 오디물이 들었다.

“나 먹으라고? 고마워.”

이모는 아까운 것을 아껴먹는 것처럼 오디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 달다. 너도 먹어봐.”

“저는 아까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더 먹어봐. 이렇게 달고 맛난데.”

그렇게 말하면서 이모는 손바닥 위에 있던 오디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음미했다. 오디가 사라진 이모의 손바닥에 오디물이 보랏빛으로 남았다. 나는 어색해서 집으로 가려고 물에서 나왔다.

“벌써 가려고?”

“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물에 젖은 발 그대로 신발을 신으려고 했다.

“수연아 잠깐만.”

이모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발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신발을 신겨주었다. 이모가 발을 닦아주는 동안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서 몸이 꼬였지만 참았다. 오디가 든 바가지를 들고 집으로 가려던 나는 오디를 이모에게 내밀었다.

“나 다 주는 거야?”

이모는 바가지를 받아 들고 물었다. 마치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어서 나는 도리어 무안했다.

“네.”

“이거 너 먹으려고 딴 거 아니야?”

나는 그렇다는 말도 아니라는 말도 없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걸었다. 그깟 오디가 뭐라고 저렇게 좋아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아차 엄마 주려고 딴 건데 하는 생각이 들자 옆에 없는 엄마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다시 오디를 따러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모가 바가지를 소중하게 안고 오디 하나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뛰어서 집으로 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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