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민의 얼굴을 간질였다. 눈이 부셔서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던 유민이 갑자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유민이 놀라서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빠 왜 안 깨웠어? 지각이잖아.
유민이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면서 거실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부엌에도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은 텅 빈 것처럼 고요했다. 유민은 늦었다는 것도 잊고 안방으로 가면서 아빠를 불렀다. 안방에도 아빠는 없었다. 잠을 잔 흔적이 없는 침대를 보면서 유민은 아빠가 자신의 아침을 챙겨주지 않고 나간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로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학교 갈 차비를 했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래도 말은 하고 가야지 생각하니 다시 짜증이 났다. 아침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유민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도 아빠는 별말이 없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빠는 평소처럼 두부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예전에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엄마를 찾아 여기저기 연락을 해봤지만 엄마는 작정한 듯 연락이 끊겼다.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러 갔지만 성인이라 이틀은 집에 안 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이틀이 지나 실종신고를 하려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다. 찾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고도 아빠는 한동안 엄마가 스스로 집을 나갔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경찰서에 수시로 찾아가 수사를 해달라고 했지만 스스로 나간 성인을 찾아줄 수는 없다는 답만 듣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유민과 아빠는 엄마를 미워하면서 그리워했다. 둘 다 그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집안일에 꽤 능숙했다. 엄마가 있을 때도 아빠가 집안인을 더 많이 해서인지 유민에게 불편한 일은 거의 없었다. 오늘처럼 아빠가 유민이 일어나기 전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학교 앞까지 걷던 유민은 자신을 괴롭히던 개운하지 못한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침대가 너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까지 봤는데 잠을 자지 않고 나간 것일까? 물론 나가기 전에 침대를 정리하고 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빠는 평소 아침에 침대정리를 하지 않는다. 그럼 아빠는 어젯밤에 집을 나갔다는 얘기가 된다. 왜 말도 없이 나갔을까? 유민은 아침에 일찍 나갈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아침에 자기를 깨우는 전화나 알람도 맞추지 않고 집을 비운 아빠한테 화가 났다. 늦은 시간이라 학교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유민처럼 지각을 한 남자아이가 휴대폰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늦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유민도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천천히 교문을 걸어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갔을 때 담임은 보이지 않았다. 뒷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수다를 떨던 진희가 손을 들고 유민에게 아는 척을 했다. 유민도 손을 들어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유민은 진희의 옆문단 제일 뒷자리에 앉아 진희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잠깐동안 보고 있었다. 1교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자리를 이동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아빠가 깨우지 않아 지각을 했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그리고 이런 하루하루가 그 후로 계속되었다. 아빠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민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아빠에게 한번 음성메시지가 왔다. 엄마를 찾아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빠는 이미 회사도 그만두고 엄마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엄마의 지인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고 있는 아빠를 생각하면 유민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왜 이렇게 멍청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싫으면 그냥 헤어지면 되지 집을 왜 나간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찾겠다는 아빠가 짜증이 났다. 엄마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은 유민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집을 나가기 전부터 외출이 잦았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엄마는 예뻤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젊은 남자가 집까지 태워주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유민에게도 들렸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는 것이 유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어서 마트에서 햇반과 라면을 사다 먹었다. 혼자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주말이 싫었다.
유민은 진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분명 진희는 유민의 베프지만 엄마와 아빠 모두 집을 나갔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유민은 진희와 학교를 나왔다. 시험 끝난 날이라 야자가 없었다. 진희의 집에서 놀 생각이었다. 유민과 진희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고 있다. 엄마 아빠가 없어서 유민의 집에서 놀면 편하겠지만 유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혼자 지낸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을 진희가 눈치챌까 봐 불안했다. 진희의 집으로 들어서는데 진희의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유민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진희할머니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친 유민은 자기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방으로 들어가면서 할머니가 진희를 불렀다.
-유민아 방에 들어가 있어.
-응.
진희의 방으로 가던 유민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할머니 방에서 유민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희 너 왜 유민이 같은 애랑 다녀? 쟤네 엄마도 아빠도 바람나서 집 나가고 아주 못쓸 사람들이야.
-무슨 말이야 할머니? 유민이 엄마 아빠가 왜 집을 나가? 그리고 유민이 우리 집에 자주 왔잖아. 갑자기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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