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세은은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 공들여 화장을 하고 새로 산 임부용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화장대 서랍을 열어 반지를 골라 끼고, 목걸이까지 세트로 맞춰서 했다. 드레스룸 한벽을 채운 명품 가방 중에서 원피스와 어울리는 것을 골랐다. 외출할 때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세은은 지겹지 않았다. 투명할 만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화장한 듯 긴 속눈썹이 세은의 매력이다. 크고 둥근 눈은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도 거침없이 하는 세은의 까칠함을 조금 부드럽게 해 줬다. 그런 이유로 세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벌은 아니지만 쓰고 남을 만큼의 재산을 가진 부모덕에 돈 걱정 없이 살았던 세은은 학창 시절에도 진로나 앞날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세은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세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외모가 끌려서 만난 남편 진영의 집안 역시 돈 걱정하면서 사는 형편이 아니다. 결혼 당시에 집을 시댁에서 마련해 준 것도, 그 집을 세은의 친정에서 살뜰히 채워준 것도 세은은 당연하게 여겼다. 원피스에 어울리는 구찌 가방을 들고 세은은 다시 한번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거실로 나갔다.
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아저씨스럽지 않은 몸매의 진영이 가벼운 외출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세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는 세은을 보자 진영이 얼른 일어나 세은의 손을 잡았다.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아 세은의 배는 그야말로 남산만 했다. 배만 볼록하게 나왔다 싶을 만큼 얼굴도 몸매도 예쁘게 잘 관리한 세은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느끼는 못한 감정이었다. 임신 전에도 얼굴로 자신 있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예쁘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남편도 임신 전보다 자신을 살뜰히 챙겼다.
집들이 선물로 케이크를 사기 위해 빵집으로 간 사이 세은은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기로 했다. 세은의 하얀 원피스가 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세은은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오늘따라 바람도 불지 않아 친구 미진의 집들이를 위해 집을 나선 세은의 기분이 아주 좋았다. 결혼하고 8년 만에 집을 산 미진은 새집 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세은 외에도 집들이는 매주 있을 것이다. 시댁에서 해준 아파트에 신혼 초부터 입주한 세은은 알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맞벌이로 아이 키우면서 어렵게 마련한 집이 얼마나 보물 같을지.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세은은 한편으로 그럴 일인가 오버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시댁에 집하나는 받지 그랬냐는 말이 미진의 앞에서 불쑥불쑥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진의 아파트 주차장에 내린 세은과 진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미진의 집이 4층이었다. 숫자로 4층이 아니라 영어로 표시된 F층이었다. 세은은 처음에 미진이 분양받아 입주한 아파트가 4층이라는 말을 듣고 왜 불길하게 하필 4층이냐고 미진을 축하하면서 말했다. 미진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세은은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은 자신도 미신이고 말장난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숫자 4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미리 차량 등록을 해서 출입에 불편함이 없게 해 놓은 미진의 배려가 기분 좋았던 것도 잠시, 역시 4층을 누를 때는 뭔가 찜찜했다. 4층에서 내리니까 넓은 복도가 나왔다. 세은은 복도를 훑어보았다. 쓰레기를 복도에서 바로 버리게 설계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세은의 아파트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몇 년 차이에도 아파트는 갈수록 좋은 시설이 많아져서 세은의 아파트가 구식처럼 느껴졌다. 부럽지만 자신의 아파트는 돈 한 푼 안 들어간 시댁 찬스 아파트라는 것을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다. 짧은 부러움을 끝으로 미진의 집 벨을 눌렀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바로 미진이 문을 열었다.
“어서 와!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 힘들긴. 집 산 거 축하해.”
“고마워. 어서 들어와. 들어오세요.”
“축하드립니다.”
진영이 어색하게 축하인사를 하면서 케이크를 미진에게 건넸다. 미진은 왜 이런 걸 사 왔냐고 하면서 케이크를 받았다. 집으로 들어가자 미진의 남편이 아들 민우를 안고 두 사람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민우 많이 컸네요.”
“네. 벌써 4살이네요. 돌 때 보고 못 뵌 것 같네요. 자주 좀 봐야 하는데 시간이 영 안 나네요.”
미진의 남편이 진영에게 말했다. 진영은 아빠 품에 안긴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미진과 세은은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만 진영과 미진의 남편은 따로 왕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만날 때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친해진 듯할 때 헤어지곤 했다. 식탁으로 두 사람을 안내한 미진의 남편은 민우를 유아의자에 앉혔다. 뷔페 부럽지 않게 차려진 음식들로 식탁 위는 빈 곳이 없이 채워져 있었다. 원래도 음식솜씨가 있는 미진이 오늘을 위해 힘을 많이 준 모양이었다.
“시켜 먹으면 되는데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와 진짜 맛있겠다. 미진아 힘들었지?”
“많이 한 것도 없는데 뭐. 만삭인 네가 더 힘들지. 일단 앉아 세은아. 진영 씨도 앉으세요.”
미진이 바로 밥을 떠 세은의 자리에 놓았다. 임산부를 배려한 것이었다. 차례로 진영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밥을 놓고 미진이 자리에 앉았다. 음식들은 역시나 맛이 있었다. 미진의 남편은 민우의 밥을 챙기면서 밥을 먹었다. 미진은 잘 팔리는 잡채나 갈비찜의 빈 그릇을 챙기면서도 여유있게 세은 부부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가 소고기뭇국에 말아준 밥을 잘 받아먹던 민우가 갑자기 보채기 시작했다. 진영이 민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행기 소리를 내면서 밥을 먹여주자 민우가 몇 번을 더 먹었다. 그러나 금방 싫증을 내고 다시 짜증이었다. 그러자 미진의 남편이 태블릿을 민우의 식탁 위에 놓았다.
“어릴 때 영상 많이 보면 안 좋은데. 민우 유튜브 많이 보여줘?”
세은이 샐러드를 먹으면서 말했다. 미진은 대수롭지 않게 민우를 보면서 대답했다.
“응. 많이는 안 봐도 가끔 보여줘. 어차피 크면 볼 건데 뭐. 우리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려면 유튜브가 일 좀 해 줘야지. 연어 좀 더 먹을래?”
“그래도 너무 어린 나이에 미디어에 노출하는 거 아니야? 부모가 조금 귀찮아도 신경 써야 돼.”
세은의 말에 미진의 남편이 민우에게서 세은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진이 접시에 담아 온 연어를 받느라 세은은 미진의 남편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진영과 미진 남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부딪혔다.
“그런데 너희 동네 조금 외곽이라 불편하겠다. 아까 오는 길에 보니까 외국인들도 많던데 안 무서워?”
“무섭긴. 요새는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놀랍지도 않잖아. 차로 다니니까 불편한 것도 없고 오히려 조용해서 좋아.”
“외국인도 외국인 나름이지. 여기는 동남아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걷다가 길에서 마주치면 무섭더라. 멀리서 보이면 일부러 돌아가는 편이야. 너도 조심해.”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 아니야. 남의 나라에 와서 오히려 더 조심하는 것도 같고. 네가 겁이 많아서 그런 거지 괜찮아.”
“뭐, 그럼 됐고. 아 나도 와인 한잔하고 싶다.”
“그지? 너 와인 좋아하는데 앞으로 모유수유까지 하려면 일 년은 더 참아야 할 텐데.”
“일 년? 미친다 진짜?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커피라도 마셔야겠어. 미진아 나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주라.”
세은은 일어나 거실 소파에 눕듯이 앉았다. 많이 안 먹은 것 같은데도 배가 불러서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미진이 갖고 온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소화도 되는 것 같고 기분도 나아졌다. 임신한 후로 좋아하던 커피를 자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와인 대신 커피라도 마셔야 했다.
진영과 미진의 남편이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집 구경을 마친 세은은 오래 나와 있어서 뻐근한 허리 탓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에 타자 세은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하게 누웠다. 몸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얼른 출산을 해서 몸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들은 출산하면 더 힘들다고 하지만 세은은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 지금처럼 눈에 안 보이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자기야. 미진이네 좋더라. 그지?”
“새집이라 그런지 좋아 보이더라. 그래도 앞으로 갚을 대출이자 생각하면 막막하겠어.”
“그니까. 그게 무슨 자기 집이야? 은행집이지. 근데 미진이는 애를 조금 신경 안 쓰고 키우는 것 같애. 벌써 미디어에 그렇게 노출시키면 안 좋다니까. 걔는 너무 무던해서 탈이야.”
“뭐 나름의 육아방식이 있으니까.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거고. 그나저나 민우 보니까 앞으로 우리가 걱정이야. 밥 한번 마음 편히 먹기도 힘들 텐데.”
“난 걱정 안 해. 잘 해낼 자신 있어. 부모가 잘하면 아이는 잘 자라게 돼 있으니까.”
진영은 세은을 사랑을 담은 눈으로 보았다. 세은의 말대로 육아가 쉽게만 되지 않겠지만 세은이라면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은은 뭐든 긍정적으로 보고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었다. 분명 아이도 밝고 건강하게 잘 키울 것 같았다.
아침부터 잔뜩 흐리다 싶더니 비가 쏟아졌다. 세은은 소파에 누워서 블루베리를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예정일이 내일이라 조심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진영은 진통이 오면 바로 전화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나갔다. 얼른 진통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세은은 조금 불안했다. 그래서 코믹영화나 예능을 보면서 딴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요구르트를 가지러 부엌에 가려고 몸을 일으키던 세은은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몸을 관통하는 가늘고 예리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소리가 멈추자 다시 몸을 움직이던 세은은 이번에는 정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발을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다리에서 양수가 흘러내렸다. 진통이 오기만을 기다렸지 양수가 터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붙박여 있던 세은은 정신을 차리고 진영에게 전화를 했다. 양수가 터졌다는 말에 진영은 바로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세은은 스마트폰으로 양수가 터졌을 때 요령을 찾아봤다. 미리 준비해 둔 아기 기저귀를 하자 더 이상 양수가 다리로 흐르지 않았다. 여전히 진통은 없었다. 삼십 분 만에 진영이 집으로 들어왔다. 미리 준비해 둔 가방을 챙겨 들고 세은을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차로 십분 거리의 병원으로 가는 길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진통이 오지 않은 세은에게 의사는 유도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주사했다.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세은의 손을 잡고 진영은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세은은 평소 자신했던 것처럼 씩씩하게 여섯 시간 만에 딸을 낳았다. 임신 기간 중에 딸이라는 것을 알고 진영도 세은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세은은 딸이 성인이 되어도 언니처럼 멋지게 나이 들어서 친구 같은 엄마로 살고 싶어 했다. 분만을 하고 지친 표정으로 누워있는 세은에게 의사가 딸을 안겨주었다. 행복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딸을 보던 세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탯줄을 자르는 감격스러운 순간에 젖어 있던 진영이 딸을 보기 위해 세은의 옆으로 다가갔다. 세은의 표정을 보고 불안한 마음으로 딸을 본 진영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의사만이 딸의 출산시간을 통보하고 회음부를 봉합하느라 바빴다.
출산을 하고 백일이 지난 후부터 세은은 복직을 했다. 진영이 육아휴직을 쓰고 딸, 수아를 돌보고 있었다. 세은은 도저히 수아를 바라보면서 행복에 겨운 엄마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분만 직후에 수아를 안은 순간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수아의 얼굴, 오른쪽 볼에 크고 파란 점이 있었다. 아니 그건 점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마치 파도가 치듯 파란 얼룩이 얼굴에서 귀로 넘어가면서 점점 옅어지게 나 있었다. 그건 볼의 반 가까이를 덮고 있는 얼룩이었다. 진짜 바다처럼 에메랄드빛 짙고 예쁜 파란 얼룩이었다. 세은은 일 년은 하겠다고 생각했던 모유수유를 백일도 되기 전에 끝냈다. 그리고 바로 복직신청을 했다. 일을 핑계로 늦게 집에 들어갔다. 실제로 일만 열심히 한 탓에 회사에서는 출산 후에 성과를 많이 내고 있었다. 진영은 수아에게 넘치게 사랑을 줬다. 진영의 눈에도 수아의 점이 보일 텐데도 전혀 그 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세은이 고집부려서 백일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 피부과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아직은 어려서 수술은 힘들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한다고 해도 성장하는 동안 재발할 수도 있으니까 중학생은 되고 수술은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세은은 절망스러웠다. 한쪽 얼굴 절반을 파도모양 파란 점을 가진 여자 아이라니. 왼쪽, 점이 없는 얼굴이 눈부시게 이쁘지 않았다면 세은이 덜 슬펐을까? 세은은 수아를 안아주거나 챙기지 않았다. 진영이 없을 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이유식을 챙겨주기는 했지만 안아서 얼굴을 보면서 말하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자기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살면서 조금도 부족하거나 남을 부러워할 만한 일이 없었던 세은이었다. 지금은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얼굴에 파란 점이 없는 아이만 보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럴수록 세은은 수아를 멀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수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했다. 그래서 수아를 안을 수가 없었다. 수아에게 젖을 물리는 순간, 수아의 얼굴을 보면 세은은 날카로운 칼이 심장을 빠르게 베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아픈 고통이었다.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딸의 얼굴조차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세은은 새벽에 출근하고 자정이 가까워서 퇴근을 했다. 그럴수록 딸이 보고 싶었지만 고단한 몸에 모성을 묻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세은의 전화가 울렸다. 진영이었다. 시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일하는 자신에게 전화를 할 정도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세은은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마치고 시아버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옆에서 시어머니와와 진영이 걱정스럽게 앉아서 잠든 시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수아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다. 세은은 수아가 자고 있는 유모차를 들여다보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버님은 어떠세요?”
“검사결과 나와봐야 알 수 있대.”
진영이 대답했다.
“어디가 안 좋으신 거야?”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버스를 잘못 타고 엉뚱한 곳에 가 계신 모양이야. 건망증이려니 나 걱정할까 봐 말 안 하고 계셨대. 그런데 어제는 집을 못 찾아와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거야. 고속도로 입구에서 헤매고 계신 것을 지나가는 차에서 신고해서 다행히 사고는 안 당했는데 큰일 날 뻔했어. 그래서 머리 쪽 검사를 몇 개 했어.”
“아이고 큰일 날 뻔하셨네. 치매 뭐 그런 거야?”
“결과 나와봐야겠지만 그런 것 같아.”
진영은 세은과 얘기를 나누면서 수아를 살폈다. 잠에서 깨려고 하는지 수아가 뒤척이더니 찡얼거렸다. 진영이 수아를 유모차에서 안아 올렸다. 진영의 품에 안기자 수아가 다시 잠들었다. 세은은 잠든 수아의 등을 토닥였다. 안 본 사이에 수아는 훌쩍 자라 있었다. 돌잔치도 진영이 거의 준비해서 치렀다. 몇 달 뒤면 두 돌이었다. 세은은 수아가 낯설었다. 세은은 수아를 언제나 분만 후에 안았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수아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았다. 수아가 자라는 만큼 커지고 있는 파란 점이 두려워서 세은은 수아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세은이 수아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사이에 시아버님이 깨어났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침대 가까이 다가가면서 시아버님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수아가 깨어났다. 잠투정을 하는지 수아가 울기 시작했다. 진영이 몸을 움직여서 수아를 달래느라 애를 썼다. 시아버님이 수아를 향해 팔을 뻗었다. 시어머님이 아버님의 몸을 일으켜 앉게 했다. 진영은 수아를 시아버님의 품에 안겨드렸다. 검사에 지친 표정이었던 시아버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얼굴 가득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수아도 할아버지 품이 좋은지 울음을 그치고 방긋방긋 웃었다. 병원이 아니라 호텔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아버님의 검사결과는 치매로 나왔다. 그런데 검사 이후에 인지검사가 정상으로 나와서 다시 검사를 더해보기로 했다. 다시 뇌검사를 하고 다 정상으로 나와서 여러 가지 더 검사를 해야 했다. 결론은 치매가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한 후로 시아버님이 잊어버리거나 정신없어하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집을 못 찾거나 현관번호를 까먹는 일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부모님 두 분의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여행도 자주 가시고 매일 함께 산책하는 모양이었다. 세은이 출근하고 나면 집으로 와서 진영과 수아와도 시간을 자주 보내는 것 같았다. 세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쁘게 일하느라 임신 전의 몸무게로 살도 빠져서 외모만으로는 아이를 출산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은의 드레스룸은 매달 사모은 가방과 액세서리가 늘어갔다. 그렇게 사모은 것들도 세은의 심장을 가르며 지나가는 통증을 없애지 못했다.
수아의 두 돌이 지나고 진영도 복직을 해야 했다. 수아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가 되었다. 세은은 수아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영이 일을 그만두고 수아를 키우기를 바랐다. 어린이집에서 얼굴에 점이 없는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기죽을 수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수아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데리러 가는 것도 진영이었다. 세은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진영은 세은보다 수아에 대한 마음으로 세은을 참아냈다. 퇴근 시간인 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는 세은에게 진영이 전화를 했다. 도저히 수아를 데리러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오늘만 어린이집에 가 달라는 것이었다. 세은은 어떻게든 핑계를 댔지만 수아를 데리러 가야 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세은은 긴 숨을 쉬었다. 벨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선생님 손을 잡고 수아가 나왔다. 엄마를 보고 수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뛰어왔다.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차갑기만 한 세은에게 수아는 항상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세은은 수아를 꼭 껴안았다. 하루의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았다. 수아의 얼굴을 볼 때는 몰랐던 편안함에 세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 세은은 놀라서 뒤로 넘어질뻔했다. 열명 정도의 아이들이 자신과 수아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수아가 집에 가려고 하면 매일 이렇게 나와요. 아버님이 오실 때도 매일 그랬어요. 어머님은 오늘 처음이라 놀라셨죠?”
“네? 왜요?”
“아이들이 모두 수아를 좋아해요. 울고 떼쓰던 애들도 수아가 옆에 가서 손을 잡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수아랑 재미있게 놀아요. 수아는 정말 보물 같은 아이예요.”
“기분 좋은 말씀이네요. 다른 아이가 집에 갈 때도 아이들이 배웅을 나오나요?”
“아니요. 다른 아이들을 배웅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수아가 저희 어린이집에서 최고 인기 있는 친구라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세은은 수아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파란 점 때문에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보물 같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수아야 어린이집 어때? 재미있어?”
“응. 좋아.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최고야.”
“다행이네. 우리 수아 대단하네.”
세은은 수아와 잡은 손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수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서 파도 같은 점을 볼 자신은 없었지만 수아가 불행하게 자랄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세은은 수아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수아가 여섯 살이 되었다. 그동안 세은과 수아가 함께 여행을 간 적도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거의 없었다. 진영이 주말마다 박물관이다 캠핑장이다 데리고 다녔지만 세은은 함께 가지 않았다. 낯선 사람, 낯선 곳에서 수아에게 집중될 시선이 싫어서였다. 걱정했던 대로 수아가 자라는 만큼 점도 커졌다. 색깔도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는 거였다.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이 모두 수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가서도 비슷했다. 여전히 수아와 노는 아이들은 수아를 좋아했고, 사소한 말다툼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수아에 대한 세은의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엄마와의 첫 여행에 수아는 정말 행복해했다. 정말 엄마도 같이 가냐고 묻고 또 물었다.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들떠서 재잘대던 수아가 잠이 들었다. 진영도 오랜만에 세은과 떠나는 여행이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세은은 새삼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엄마, 아내였다는 생각을 했다. 도무지 인생에서 부족함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게 수아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딸과 함께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세은은 포기하고 살았다. 세은이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받을 시선이 싫어서였다. 언제나 예쁘고 화려하고 밝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복을 막을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아의 파란 점은 세은에게 불행이고 부끄러움이었다. 여섯 살이 되기까지 수아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아에게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고 수아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수아와 진영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뒷자리에서 잠든 수아를 돌아보았다. 오른쪽 볼에 있는 파란 점에 세은은 다시 심장을 베이고 말았다.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세은은 수아와는 다르게 도무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
진영의 차가 휴게소로 들어갔다. 어느새 잠에서 깬 수아가 휴게소를 보고 좋아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간식거리를 고르면서 수아는 날아갈 듯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 수아의 뒷모습을 세은은 행복한 얼굴로 바라봤다. 간식을 사들고 차로 가던 세은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렸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로 가려고 세은의 방향으로 걸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세은은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차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세은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세은은 놀라서 달려갔다. 수아가 쓰러진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신고를 하거나 심폐소생술 하는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는 말없이 쓰러진 사람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세은은 다음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쓰러졌던 사람이 깨어나서 일어난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면서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깨어난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세은을 발견하자 엄마 하면서 달려왔다. 여섯 살 해맑은 웃음을 웃으면서 달려오는 수아를 세은은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수아야 저 사람 어떻게 깨어났어?”
세은이 물었다. 수아는 세은의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몰라.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데.”
“그럼 왜 그 사람 손 잡았어.”
“그냥 아파 보여서 잡았어.”
뒤늦게 간식을 사들고 차로 걸어오던 진영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녀의 모습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세은은 부족함이라고는 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