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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의 위층, 누군가의 아래층에 살고 있다.

층간소음, 위층이 문제일까?

by 써니


눈이 내리면 우리 집은 설국열차가 된다.


아들이 6살이 되는 해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와 남편이 고르고 골라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34평, 세 가족이 살기에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다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딱 좋은 평수이다. 거실 창문은 산이 가득 채우고 있어서 사계절 자연다큐를 보는 것 같다. 얼마 전 눈이 내리던 날에는 고라니 한 마리가 눈 쌓인 산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우리 집 거실 창문을 통해서. 새들이 짝지어 날고 우리 집 창틀에 걸어둔 솔방울에 넣어둔 쌀을 먹으로 새가 오기도 한다. 이런 아파트를 꿈꿨다.

이사를 오기도 전에 입주청소를 하는 분이 전화를 했다. 청소를 하는데 아래층에서 항의차 올라왔다고. 서울에서 일하던 남편은 남양주에 있는 새집으로 과일을 사들고 갔다. 아래층에 사과를 하고 다시 광명 집으로 왔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놀랐다. 아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아래층에서 항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들은 딸 가진 엄마들도 부러워할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타고난 성격이 그랬다. 그래서 층간소음으로 항의받는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사를 하고 그날부터 아래층에서 인터폰과 방문이 시작됐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슬리퍼를 신었지만 아들이 잠깐 슬리퍼 없이 걸으면 띠로로롱 인터폰이 바로 울렸다.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래층에는 임산부가 살고 있었는데 임신으로 신경이 예민하단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신경 쓰이게 뛰는 편도 아니고 9시면 자는데도 인터폰은 불이 났다.

이사 다음 해에 아래층에는 아기가 태어났다. 낮이고 밤이고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로 알았다. 정말 아기는 밤이고 낮이고 울었다. 비명 같은 울 임소리였다. 나는 그동안 당한 만큼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음에 대해 알려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도 고통스러운 임신을 거쳤고, 아들도 밤이고 낮이고 울었으니까.

이사온지 5년이 지났고, 아래층에는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떼쓰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리고, 둘째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를 혼내는 듯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어느 날은 무슨 일이 있나 싶을 만큼 아이의 울음소리와 부모의 말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그런 밤이면 나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자주 들리는 소리에 정말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나는 지금도 벌벌 떤다. 아들이 12살이 되었다. 예전보다 큰 아들은 코로나로 답답해서인지 쿵쿵 뛸 때가 있다. 코로나 사태에 슬리퍼만 몇 개씩 바꿨다. 더 효과 있는 슬리퍼를 위해 여전히 물색 중이다. 코로나가 우리의 마음도 힘들게 하고 몸도 지치게 한다.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힘찬 육아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서로 싸우는 소리만 아니라면 나는 그깟 층간소음 따위 사실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싸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층간소음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향한다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의 아랫집이고 윗집이다. 이건 아파트에 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위층이라고 아래층의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위층은 항상 죄송하고 아래층은 항상 당당한가? 겨울나무에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서 문득 5년간의 층간소음 전쟁과 어젯밤 늦게까지 들리던 두 아이의 울음소리를 생각한다.

아마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봤던 층간소음 기사 때문인 것 같다.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아파트의 층고를 높이고 슬래브 두께를 24mm로 해야 한다고 하는 기사였다. 결국 층간소음은 처음부터 주민들끼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잘못한 건설사를 빼고 입주민들끼리 더 이상 미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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