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깨고서도 꿈인가 싶을 만큼 비몽사몽이었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현관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왔다. 코를 심하게 고는 남편 탓에 거실에서 자고 있던 나는 그 소리에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현관문이 닫히자 소리는 작아졌다. 이불을 덮고 다시 자려고 하는데 아련하게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꿈이 아닌가 보다.
인터폰을 켜고 현관 카메라를 켜보니 남자가 앉아서 중얼거리고 있다. 머리가 고개를 까닥이는 인형처럼 움직인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다. 불안해서 잠이 달아났다.
경비실에 연락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남자의 위치가 우리 집보다는 앞집에 가까웠기 때문에 앞집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잠을 다시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추운데 남자가 계속 밖에 있어도 될지 모르겠다. 남자의 말소리가 계속 들린다. 혼자 누구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다시 인터폰으로 밖을 보니까 남자는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다. 갑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린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마치 킹콩 같았다. 남자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만취한 채 집에도 가지 못한 남자의 어제가 궁금하다.
덜컥
갑자기 남자가 우리 집 문을 열려고 한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어서 열리지 않는다. 순간 문이 열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니 섬뜩했다.
다시 덜컥
문은 역시 열리지 않는다. 나는 마치 영화 '살아있다'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
쾅
갑자기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경비실에 연락해야 할 거 같았지만 망설여졌다. 모니터를 통해 보니 남자의 커다란 얼굴만 보인다. 왔다 갔다 남자의 얼굴이 흔들렸다.
현관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현관이 조용해졌다. 불안해서 이제는 내 몸이 왔다 갔다 했다. 다시 자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 집 현관문에 기대어 잠이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현관문을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경비실에 연락을 하지 않고 다시 누웠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아 이불속에서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더 추워진다고 했는데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무엇이 남자를 이렇게 취하게 했는지 마음이 쓰였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남편의 말이 생각났다. 이 남자도 장사가 안 돼서 속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주식으로 재미보고 있다는 지인이 전화를 해서 말했다. 우주의 기운이 지금 한국을 향하고 있다고. 대기업 간부인 남편에 주식으로 돈도 벌었다니 우주의 기운은 그녀를 향하고 있나 보다. 나와 현관의 그 남자는 우주의 기운, 그 반대편 음지에 있나 보다. 우주의 기운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그 기운이 닿지 않을 만큼 우리 집도 그 남자도 너무 바닥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