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지난주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반쪽짜리, 일주일에 2~3일 등교였다. 아들이 학교에 가서 오전 시간이 나에게 자유시간이 되었다. 등교 전에는 여기저기 다닐 생각이었는데 막상 자유시간이 생기니 몸이 게으름에 익숙해서 귀찮았다.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는 시간이 좋아서 멍 때렸다. 금방 아이의 하교시간이었다.
오늘은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을 처리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작년에 내 차에 시동을 건 횟수가 다섯 번이 안 된다. 불쌍한 붕붕이. 20년 가까이 운전을 했는데도 운전이 떨렸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밀려왔다. 막상 아파트를 벗어나니 폭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속도로를 끝도 없이 달리고 싶었다.
첫 목적지 도서관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도서관까지 차를 이용하면 10분 거리다. 버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으면 40분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동네에 살다 보니 가까운 거리도 차를 이용할 때가 많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땐 그냥 걷는 게 편하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여러 명의 경찰관이 도로에서 뭔가 분주하다. 무슨 일일까?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싶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열린 구급차에 누워 있는 사람이 보인다. 많이 다친 것일까 걱정이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은 역시 우리 집, 이불 밖은 위험하다.
도서관으로 들어갈 때는 항상 기분이 좋다. 잘 정리된 책장에서 쉽게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어서 도서관에 오면 오래 머물고 싶다. 아들도 도서관에 오면 집에 안 가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책과 아들 책 잔뜩 빌려서 차에 싣고 나오는데 뭔가 뿌듯하다. 이 자유의 공기, 낯설지만 기분 좋다.
급한 은행 업무를 위해 은행 문을 열었다. 직원만 있고 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어서인지 내가 문을 열자 모두 나를 본다. 모든 창구가 비어있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대로 직진해서 가기로 한다. 왜 은행이 이렇게 텅 빈 것일까? 사람들은 이제 은행에서 처리할 일이 별로 없나 보다. 예전에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는데 이 여유는 무슨 일일까? 사람들은 모든 은행업무를 스마트폰으로만 처리하나 보다.
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집에 도착하니 피곤이 몰려온다. 몸이 집에 익숙해서 차로 동네 한 바퀴 돈 게 전부인데도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남편의 말대로 운동이 필수다. 정말 이제는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세상으로 나갈 날을 위해 체력을 키워야겠다. 예전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어쩌다 집에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들이 하교할 시간에 맞춰 맛있는 점심을 만들 생각으로 파스트를 했다. 망했다. 괜히 이런저런 낯선 재료 넣었다가 정말 낯선 파스트를 만들고 말았다. 아들은 너무 배가 고파서 돌도 먹을 수 있다며 나를 위로한다. 다행히 돌보다는 맛있었지만 역시 요리는 오래된 레시피가 최고의 레시피였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하루를 꽉 채워서 산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정말 매일 동네 한 바퀴라도 돌아야 할 것 같다. 아파트라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