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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01. 2021

나의 누아르는 장국영이다.

언제이면 4월 시작할 때 장국영을 떠올리지 않게 될까?

얼마 전 '아비정전'을 다시 봤다.

외롭 떠도는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영화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게 살아가지만 그런 인생이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 같은 1분처럼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영원히 기억한다는 말, 1분을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1분과 영원이 같은 시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대사로 아비는 수리진을 유혹하고, 수리진은 아비에게서 헤어나지 못한다.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이 영화에서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의 모습이  좋았다. 이렇게 후줄근한 차림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장국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외롭고 뜨겁고 슬프게 몸을 흔든다. 이 장면을 얼마 전에 영화 '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김영민 씨가 재현하는데 너무 비슷해서 한참을 웃었다. 다만 김영민 씨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장국영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쓸쓸한 표정이다. 여자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여자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남자다. 영화에서 장국영의 여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누구도 그를 붙잡을 수 없고, 누구도 그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비에게 영혼까지 털린 수리진에게 아비는 누아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수리진이 되어 잡히지 않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고통에 몸도 마음도 삐쩍 말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남자, 아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 '야반가성'을 정말 좋아했고, 울고 싶은 날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울었다. 송단평으로 부르는 장국영의 노래가  좋았다. 그리고 장국영처럼 슬픈 얼굴을 가진 배우, 오천련과 장국영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송단평과 두운언의 사랑이 너무 슬퍼서 볼 때마다 울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랑을 하다니 송단평도 두운언도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영화 '천녀유혼', 장국영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얼굴과 왕조현의 몽환적인 모습 때문에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다.  사람과 귀신의 사랑이라 이루어질 수 없어서 슬픈 영화다. 요괴는 내 취향이 어니지만 장국영이 내 취향이라 좋았던 영화.


장국영의 영화 중에서 '금지옥엽'이 가장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영화에서 장국영은 쓸쓸하고 어둡지만 이 영화는 달달다. 부유한 음반제작자 샘을 연기하는 장국영은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남자로 변장한 자영에게 끌리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설정, '커피프린스 1호'와 비슷하기도.


장국영이 사망한 지 18년이 지났다. 만우절 거짓말 같은 그의 죽음이 나에게는 4월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내 20대는 비디오 가게에서 장국영의 영화를 빌려보고 울고 장국영처럼 마음을 태워가는 시간이었다. 1분을 영원처럼 살고 있는 장국영이 다시 나의 4월에 찾아왔다. 잔인한 4월처럼 나의 누아르는 여전히 장국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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