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프>(1948)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스펜스(suspense)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장기(長技)이다. 히치코의 영화 중에서 서스펜스가 절정에 이른 유명한 장면을 몇 꼽자면 대표적으로 <싸이코>(1960)의 샤워 씬, <새>(1963)의 까마귀 몽타주, <현기증>(1959)의 반전 등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는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긴장감과 박진감은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고 있다는 영화적 체험이다.
히치콕의 <로프>(1948) 또한 여러 의미에서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영화이다. 두 주인공의 살인 행각이 누군가에게 들킬지 들키지 않을지, 두 남자가 나누는 우생학적 대화 혹은 에로틱한 재현이 금기를 범할지 아닐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듯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외줄은 단단하고 견고했다. 사람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살인 무기처럼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주인공 브랜든과 필립이 외줄로 데이비드를 살인하며 시작한다. 두 주인공이 데이비드를 살인하는 이유는 영화의 중반부 데이비드의 아버지인 카델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이야기는 카델이 추파를 던지며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을 범죄라고 생각하지만, 소수에게는 혜택이라고 생각했지.” 카델의 이야기를 듣고 카델과 브랜든은 본격적인 우생학적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델과 브랜든은 우생학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카델 본인은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살인은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인으로 인해 해결될 수 있는 실업자, 가난 등과 같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본인만의 논리를 펼친다. 브랜든은 카델보다 살인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열등한 자와 우수한 자들로 편 가르며 본인은 전통적인 도덕상의 개념들 위에 서있는 소수의 우수한 자라고 자위(自慰)한다. 하지만 브랜든은 히틀러가 행했던 살인은 찬성하지 않는다. 히틀러와 그의 파시스트 당원들은 모두 뇌가 없는 살인자일 뿐이라며 자신의 주장과 모순된 발언을 한다.
이는 결국 우월주의를 과시하는 우월주의자의 논리 없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살인 허용에 대한 범위를 정하는 것도, 본인 스스로 우월한 존재라며 과시하는 것도, 살인을 행한 이유도 모두 어처구니없는 본인의 철학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월주의에 대한 이들의 자기 합리화는 누군가를 살인한다는 강제성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브랜든의 사상은 필립이라는 또 한 명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필립은 브랜든과 같이 살인을 저지르지만 왜 살인에 가담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딱히 없는 듯하다. 영화 내내 불안해하는 어설픈 모습을 보면 마치 살인을 목격한 목격자처럼 보이기도 하며 우월주의를 과시하는 브랜든이 마치 필립을 강제적으로 세뇌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든의 자위(自慰)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인물이 바로 카델이다.
앞서 말했듯이 카델도 브랜든처럼 어느 정도의 살인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와 동시에 브랜든과 필립의 살인 게임을 파헤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카델은 브랜든과 필립이 주최하는 이 파티가 뭔가 의심스럽다고 느낀다. 그리고 카델은 본격적인 추리를 시작한다.
이러한 카델의 모습은 마치 관음증적이다. 관음증은 ‘다른 사람의 성적인 활동을 바라보는 데서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카델이 본격적인 추리를 시작함과 동시에 카메라는 카델의 단독샷을 잡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통일성은 영화가 끝나기 무렵까지 계속 이어진다. 카델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모습과 이 모습을 담아내는 프레임은, 히치콕 본인만의 간접 방식으로 담아낸 관음증적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에게 카델이 이들의 살인 행태를 알아낼지, 알아내지 못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결국 카델의 의심은 영화의 결말에 종착하기 전까지 서스펜스를 이끄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카델이 피아노를 치는 필립에게 다가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물으며 필립을 긴장시키는 장면은 서스펜스의 최고조에 이른다. 카델의 질문을 회피하며 대답을 하지 않는 필립은 불안해한다. 벌거벗겨진 것처럼 불안해하는 필립 자체를 즐기는 관음증적인 카델은 메트로놈을 켠다. 카델의 메트로놈 소리와 필립의 피아노 소리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며 이들의 충돌은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필립은 살인 도구인 외줄을 바라보며 카델에게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한다. 증거는 또 다른 증거를 낳고 카델은 결국 진실을 밝힌다. 앞서 자신을 과시하며 아슬아슬한 게임을 즐기던 브랜든과 브랜든을 믿고 따르던 필립은 모든 것을 해탈한다. 살인 게임을 진행하던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오고 있는 경찰은 사이렌 소리를 뽐내며 아들을 잃은 카델을 대신하여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린다.
카델의 관음증적 행태와 같은 맥락의 성적 재현은 브랜든과 필립의 행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브랜든과 필립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둘의 동성애적 행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히치콕만의 간접 방식으로 동성애를 재현한다. 첫 번째 재현은 영화 초반에 브랜든이 필립에게 ‘그리고 낮에 하긴 했잖아.’라고 하며 필립의 장갑을 벗기는 장면이다. 여기서 브랜든은 'date'라고 한다. date는 그들이 행한 성적인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필립의 장갑을 벗기는 행동은 마치 date를 마친 후 벗기는 콘돔의 도상(圖像)과도 같다. 영화 내내 살인 게임을 즐기는 자신만만한 브랜든은 남성의 도상을, 브랜든과 대비되는 필립은 여성의 도상을 띤다. 그들의 대비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를 허무는 듯하다. 영화 중간에 필립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도 필립이 여성의 도상을 띄고 있다는 증거이다. 필립이 영화 내내 불안해하는 모습은 아마도 살인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의 첫 살인은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재현이며 필립을 여성에 빗대어 표현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로프>는 분명 아슬아슬한 영화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너희 이런 생각하고 있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우생학에 대한 도덕적 상념, 동성애에 대한 성적 재현 등은 관객의 은연중에 있는 주관적인 생각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듯하다. 타자와 쉽게 이야기하지 못할 주제를, 히치콕은 관음증적 행태로 영화에 담아냈다. 이는 <로프>를 전지적으로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서스펜스이다. 브랜든이 살인 게임을 진행했듯이, 히치콕은 본인의 게임에 관객을 초대했다. 그리고 관객은 관 안에 들어있는 시체처럼 꼼짝없이 히치콕의 게임에 놀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