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흡>(2018)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투명한 술. 한낱 존재하지 않는 공허함은 정주를 대변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온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는 정주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하지만 정주에게 죄악감은 지울 수 없는 손목의 주저흔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남은 것이라곤 5년 전 죽은 아들의 사진뿐인 정주에게 한 남성이 나타난다. 12년 전 유괴했던 그 아이, 민구이다.
영화 <호흡>(2018)의 부제인 ‘Clean up’은 ‘청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주는 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는 생계를 위한 직분이자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할 본분이기도 하다. 정주는 청소업체에서 일하며 더러워진 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죄는 회개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 정주가 일하는 청소업체에서 우연히 같이 일하게 된 민구도 과거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했던 이들의 악연은 청소와 회개라는 교집합으로 묶여 이들이 내뱉는 호흡의 무게감이 공존하게 된다.
공원 공중화장실이 보금자리인 민구의 현 상황은 과거, 정주와 전남편의 유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병이 있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린 민구 어머니의 수술비를 갈취해 아들을 수술시키지만, 민구는 어머니를 잃는다. 자신을 보살펴줄 사람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해야 했던 민구는 자전거를 훔쳐 팔았다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다녀온다. 가해자 정주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난 피해자 민구가, 전과자라는 가해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정주는 민구를 보살핀다. 보관기간이 만료된 민구 어머니의 유골함과 함께 민구가 안착한 곳은 정주의 집.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집에서 공존하게 된다.
하지만 정주는 민구의 과거를 알게 될수록 죄책감만 쌓이게 된다. 민구를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씻어낼 수 없는 죄의식은 민구와의 성관계로 표출된다. 정주는 성관계 중 “그때 웃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웃는 모습 없이 파리하기만 했던 정주는 과거, 전남편과 함께 자신의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안도감에 놓였을 때 딱 한번 웃는다. 정주의 웃음은 웃음이라는 생기를 죄의식으로 관통하는 아이러니이며 다시는 없을지 모르는 부재의 요소이다. 민구는 정주의 영문도 모르는 소리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정주는 대답이 아닌 미역국이라는 모(母)의 보편적인 의무로써 민구에게 저지른 죗값을 암묵적으로 치르길 바란다.
사적 공간에서의 이들의 공존은 핏자국을 닦아야 하는 공적 공간에서 결말을 맺는다. 민구는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주에게 왜 잘해줬냐고 묻는다. 그리고 정주의 목을 조르지만 결국 정주를 죽이지는 못한다. 자신을 보살펴준 정주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온기는 삭막한 세상을 혼자 살아온 민구에게 진심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온 정주가 민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피 묻은 장갑을 벗고 민구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는 것뿐. 정주의 죄의식은 민구의 침묵으로 위로를 받는다.
정주는 결국 민구로부터 회개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주가 청소하는 공간이 정주의 손길로 인해 깨끗해질지언정 그 공간을 가득 메웠던 시간이라는 역사는 지워지지 않듯이, 정주의 죄의식은 가슴 한편에 남아있을 것이다.
정주가 앞으로 민구와 같이 살지, 아니면 평생 마주치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에게 휘몰아친 소나기가 지나갔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이들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끊어지지 않는 호흡으로 지금까지 견뎌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