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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Apr 14. 2023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그들도 미숙하다

[사람 #03] P의 이야기

천재이다.


P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고, 지금도 천재 소리를 듣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천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란 평가를 받을 것이다. I하고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P란 존재를 알 수 있게 된 건, 그가 I의 사촌동생이란 이유 하나뿐이다.



I가 기억하는 P의 첫 모습은 보자기에 싸인 체 꼬물대는 모습이었다. I의 동생(B라고 지칭된)도, P의 형인(C라고 등장할) 다른 사촌동생의 첫 모습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8살 차이의 동생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다. I가 수영교실에 갔다 와서 보면 P는 계속 잠들어있었고, 그의 모습에 I는 신기해했었다. P가 20대 중반인 지금의 모습을 보면 더 신기해하고 있고.

 


P는 수학과 생물 쪽으로 비상했다. 누구도 그를 가르치기 어려워했었을 정도다. 한국이란 땅이 너무도 좁아 G사가 개최한 경진대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미국에 넘어가 상을 휩쓸었으며, 대통령 표창장 및 상금까지 받았던 이력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때는 이미 앞서 나온 A가 다니고 있던 누구나 알만한 세계 최고 대학의 연구실에서 방학마다 넘어가 공부 및 연구를 진행했으며, 지금은 미국의 대학(Univerty가 아닌 그 과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College)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과거 인턴 생활을 했던, 글로벌 대기업 A사에 입사 예정이다.

 


P와 I가 더 많은 대화를 시작한 것은 P가 대체 복무(왜 똑똑한 애들일수록 아픈 곳이 많을까?)를 위하여 한국에 잠깐 들어와서부터이다. P와 I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함께 빈소를 지켰을 때부터 I는 P가 다 성장했다고 느꼈고, 이제야 대화가 가능한 사람으로 느꼈다. 너무나도 어리게 느껴졌던 P에게 가지고 있던 거리감이 사라졌다고 할까.


 

웃기게도 둘의 이야기를 이어준 건 주식투자였다. I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거라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P의 투자방법, 태도, 원하는 바를 듣다 보니 천재들도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간 그의 상황, 미래, 꿈 등을 들으면서 다르긴 다르구나 란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사실 I는 P를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안 좋은 쪽으로.



P가 고등학생 때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인데, 지하철 1번 출구로 들어가 8번 출구로 나오라고 하면 그는 제대로 간 적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어려워해서 반대편 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갔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일화도 존재한다. 저렇게 생존력이 없어서야 쯧쯧쯧이 I가 P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소한 계기로 인한 대화의 흐름은, P에 대한 평가를 뒤집어 놓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전자기기 등으로 보완하며, 현실에 발맞추기 위하여 노력을 다한다는 것. 그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고 그가 어떠한 이야기를 쌓아나갈 때마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 I의 무료한 일상에 특이점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바로 곁에 존재했다는 것. 친척이라는 핏줄로 엮인 관계이기에 너무 무심하고 평범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과소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


 

P는 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냥 나이차 많이 나는 사촌 형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먼저 세상을 조금 더 살아간 존재이기에 I에게 궁금한 게 많을 뿐인 건지. I가 여러 대륙을 떠돌다 머리를 길러 나타났을 때, 이상한 사람임을 직감하고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는지. I가 P를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P도 I를 무모하고 현실감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을는지.

 


2021년 4월 I와 P는 닭갈비를 먹으며 또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8년 전 I가 갑작스럽게 한국에 돌아왔을 때,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30 넘은 아저씨처럼 보였다고. 지금은 친숙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한다는 주제에, 닭갈비+우동사리+볶음밥까지 먹는 P를 보면서(맛있으면 0kcal!!) 어이없어하면서도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던 I는 P의 말에 이러한 소소하고 즐거운 관계가 계속되기를, P의 특별함에 I가 매몰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천재들을 만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의 주위에 천재란 사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사람들은 평범하다는 평가를 듣게 되고, 어느 순간 보통의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혹은 과대평가였거나.



P도 그러한 유형을 따라가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는 아직 어리기에, 많은 것을 장담할 수 없지만, 다행인 건 그 주위에는 그를 아끼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그가 그냥 범재일지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P를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I도 지켜보고 있고.




PS. 이미 너무도 많은 부담을 진 것처럼 보이는 너이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는 건 무리일 거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더 잘할 필요도 없어. 그냥 너이기를. 주변과 상관없이 너이기를 바랄게.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Oswaldo Guayasamin, 'Nino Dormido',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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