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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Mar 09. 2022

머물렀던 곳들에 대한 단상

왜곡된 기억을 통한, 도시의 이야기

"Since life is short and the world is wide, the sooner you start exploring it, the better."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다. 그러므로 세상 탐험은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 Simon Raven



그냥 여행이 좋았다. 잠만 자더라도 아침에 눈뜨면 새로운 천장이 보이는 게 좋았고, 밥을 해먹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부엌에서 조리하는 게 좋았다. 하루하루 마주치는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곳에 있는 가게들의 역사가 재미있었다. 하룻밤 1달러 비용의 부둣가 위의 쓰러져가는 게스트하우스도, 친구가 쳐주었던 숲속의 텐트도, 수백 명이 매트리스만 깔고 잠들었던 어느 동네의 체육관도 나에게는 숙소였고, 집이었으며, 보호받는 기분이 드는 공간이었다.



그곳의 기억들을 가지고 돌아와, 생활을 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항상 돌아다닐 것처럼 말한 것에 비해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할 때에는 방구석에 박혀있었다. 바깥을 떠돌아다니거나, 아예 방콕을 하는 나를 보면 약간은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스스로에게는 그 자체가 나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어딘가 나가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할 수 있는 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소들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일뿐이었고, 추억할 때마다 그 풍경은 다시 왜곡되어서 나의 뇌리에 박혔다.


그 왜곡된 풍경들도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떠오르면 가끔 글로 남기려고 한다.


여행 중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외장하드가 고장 난 일들도 있어서, 안 그래도 적은 사진들 중에서도 남아있는 것은 없다. 혹시 사진이 들어간다면,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닌, 검색해서 나온 저작권의 문제가 없는 사진들일 확률이 높다. 그 사진들을 보고 난 또 추억을 보정할 것이고, 왜곡할 것이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기억하는 방법이고,
이에 읽어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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