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 선언서

찌질한 인간 김경희를 읽고서 / 가꿈바꿈 5호 (18.07.16)

by 김꿈

읽은 것: <찌질한 인간 김경희>
<찌질 선언서>

며칠 전 일이다.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허울 없이 친한 친구가 웬일인지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서로 지긋이 바라보는 관계는 아니었기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왜, 나 뭐 묻었어?”

친구의 고개가 갸우뚱거리며 어깨로 손이 갔다. 어깨에 무언가가 묻었구나 싶었다.

“너 옷 거꾸로 입은 것 같은데?”

재빨리 고개를 내려 티셔츠 앞부분에 택이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도 없었다.

“아니야. 여기 택 없어.”

“너 목 안 졸려? 여기 앞부분이 올라와 있고 목 쪽이 훤하잖아. 그리고 어깨선도 안 맞고.”

옷 뒷부분을 더듬거려보았다. 그곳에도 택은 없었다. 만져보니 뒤 목덜미가 시원한 것이, 앞보다 뒤가 더 파진 것이 느껴졌다.

“그, 그래? 그런가 보지, 뭐. ”


친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실은 창피했다. 25살 먹고 옷 앞뒤도 구분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사실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디테일에 약하다. 종종 옷 앞뒤를 바꿔 입고, 흰옷을 입는 날이면 어김없이 옷에 무언가를 묻힌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핸드폰을 찾기도 하며, 가방 속 이어폰과 카드 지갑의 줄은 항상 엉켜 있어 버스를 탈 때마다 버벅거리곤 한다.

나와 달리 언니는 디테일의 왕이다. 어떤 일을 해도 야무진 손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옷장 정리를 할 때, 언니가 갠 옷과 내가 갠 옷은 확연히 다르다. 그녀는 옷 선에 맞추어 매장에 디피된 옷처럼 깔끔하게 접고, 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접는다. 대충 접어 제멋대로 선이 가버린, 찌글찌글해진 옷을 입은 나를 보고 언니는 ‘찌질이’ 혹은 ‘찐따’ 라고 불렀다.

찌질이, 찐따. 이런 단어들은 내가 생각해도 나와 가까웠다. 완벽하지 않은, 항상 어딘가 부족한 모습. 그렇지만 가족 이외의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애당초 완벽하기는 글러 먹은, 세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쿨한 척하기’다. 찌질한 모습을 들킬 때면 ‘나는 쿨해. 그래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아.’라는 방어법을 택했다. 속은 하나도 쿨하지 않고,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말이다.

최근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내 눈을 사로잡는 책의 제목을 발견했다. 그것은 <찌질한 인간 김경희>. 김경희는 가명이 아닌 저자의 본명이었다. 자신의 이름 앞에 ‘찌질한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넣다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찌질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찌질한 나는 동족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 후, 홀린 듯이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찌질한 인간 김경희>는 직업 무, 자산 무, 애인 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하며 이따금 “힘내.”라는 메시지를 받고, 친구랑 밥 먹으러 가면 “야 됐어! 내가 낼게.”라는 말을 종종 듣는 김경희 씨의 에세이다. 그녀는 회사가 싫어 퇴사했지만, 돈과 현실 앞에서 작아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춘이다. 그녀가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을 벗어났다는 거? 남과 나, 그 사이 어디쯤 서 있다.

그녀는 겁나게 솔직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찌질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적어간다. 잘못된 일을 당하고 그 즉시 따지지 못하고 후회하는 모습, 퇴사 후 행복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500원 때문에 사이즈 업을 포기하는 모습. 찌질하다고 여겨져 숨기고 싶던 모습을 그녀는 글로서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중 돋보였던 면모는 ‘인정’의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은 출간된 자신의 책이 시간이 지날수록 매대에서 밀린다는 이야기를 담는 글이다. 서점에 가지 않고, 순위를 확인하지 않다가 이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는,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바꿀 수 없을 때 - 저건 잘못되었는데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 자연의 순리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 이런 상황들을 마주할 때, 어쩔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찌질한 인간 김경희는 세상의 룰을 인정하고 묵묵히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간다.

아마, 누구나 조금씩은 찌질할 거다. 요즘 공감하는 삶의 진리 중 하나는 ‘빛이 있는 곳에는 그늘도 있다.’라는 말이다. 보기에는 밝아 보이고 좋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넘어지고, 자책하고, 혼자 울기도 하는 날들이 있을 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면은 꼭꼭 숨긴다. 인스타그램에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올리는 것처럼.

<찌질한 인간 김경희>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며 숨기는 ‘찌질함’을 앞세운다. 신기하게도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하다. 찌질한 매력이 있는 이 책은 독립출판물 중 드물게 대형서점에서 사라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감을 자극한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처럼 찌질함을 숨기는 것과 김경희 씨처럼 찌질함을 선언하는 것, 둘 중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제 나의 찌질한 모습을 그만 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 자신을 찌질한 인간이라고 적는 그녀를 보니 ‘찌질해도 되는구나.’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알게 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싶기도 하다.


고백합니다. 저는 대단히 찌질한 사람입니다.





by. 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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