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꿈바꿈 9호 (18.08.13)
오랜만에 중식당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후식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배에 스산하고 불쾌한 기운이 흘렀고 카페에 들어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었고 속이 한결 가벼워져 괜찮은 줄 알고 다시 돌아와 아메리카노와 빙수를 실컷 먹었다. 이후에 친구를 만나서도 배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싹싹 긁어먹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뜨거웠고, 배가 아팠으며 계속해서 신호가 왔다. 한 끼 굶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 즈음, 이쯤이면 될 것 같아 마신 차가운 사과 주스에 또 속은 불같이 성을 냈고 하루의 모든 기력을 화장실에서 소진하고야 말았다. 그날부터 나는 먹은 즉시 화장실을 가야 하는, 투입과 산출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효율성 있는 인간이 되었다.
장염이 처음은 아니다. 무리한 다이어트 후 약해진 위장 때문에 장염은 여름이면 꽤 자주 나를 찾아오곤 했다. 이 때문에 대처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두부, 달걀, 바나나와 같이 자극이 없는 음식을 먹고 이온 음료로 수분을 보충해주는 것. 이 식단을 지키기 위해서는 요즘 나의 식단 지분율 90%를 차지하는 세 가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커피(카페인), 밀가루, 맥주.
땀에 젖은 채로 기상하는 날이 더 많은 요즘, 무더위는 나를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독, 맥주 중독 그리고 밀가루 중독자로 이끌었다. 출근 후 아이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었고,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점심시간에 움직이기 싫어 샌드위치나 빵으로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밤 덥다는 핑계로 매일매일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셨었다.
배도 아프고, 먹으면 바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응급 배출 생활은 불편했다. 재빨리 낫기 위해 일주일만 커피와 밀가루, 맥주를 끊고자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식사로 죽을 사다 먹었다. 죽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더운 여름에 죽을 먹으려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이마저도 바로 배출돼버려 금방 허기가 졌다. 집 냉장고를 열어보아도 평소에 즐겨 먹는 맥주와 안줏거리로만 가득 찼을 뿐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뜨거운 죽을 먹는 거나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것은 괜찮은 편이었다. 진실로 괴로운 것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 거였다. 하루를 열어주던 커피의 각성 효과가 없으니 온종일 피곤했고, 눈이 감겨왔다. 이온 음료를 사서 마셨지만, 그 밍밍한 맛으로는 채울 수 없는 카페인만의 강렬한 맛이 그립고 그리웠다. 게다가 죽은 소화가 정말 빨리 이루어졌고, 섭취 후 2시간이면 배가 고파왔다.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당장 내 옆에 있는 과자뿐이었다. 밀가루 끊기 선언 17시간 만에 밀가루에 다시금 손을 댔다.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다 금기를 깨고 먹으니 과자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꿀맛.)
몸의 자생능력은 언제나 놀랍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배를 콕콕 찌르듯이 아렸던 뱃속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먹자마자 바로 화장실을 향하지도 않았고, 몸에 오르던 열기운도 가셨다. 이 정도면 장염에서 해방인가 싶어 커피 끊기를 선언한 지 3일 만에 카페라떼를 주문했고, 옆에 있던 뽀얀 빛깔의 베이글이 날 부르는 듯하여 그 역시도 구매했다. 맛있게 먹긴 했는데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급히 하차해 생전 처음 와보는 역의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1시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40분이 넘게 걸려 늦게 집으로 향하던 그 날 밤, 나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깊게 번민했다. 왜 먹었을까, 그깟 식욕 하나 이겨내지 못할까. 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양념치킨을 먹고 있었고,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구나 알다시피 치킨의 유혹은 정말 참기 힘들다. 게다가 후라이드도 아닌 양.념.치.킨이다. 바삭한 소리로 귀를 자극하기보다 자극적인 매운맛으로 후각을 자극하는 치킨계의 팜므파탈. 참을 수 없는 빛깔과 냄새. 엄마에게 “먹으면 배 아플 텐데 치킨이 먹고 싶어. 먹을까 말까?”라고 물었다.
“뭘 고민해, 먹고 싶으면 먹고 아프면 되지.”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때의 나에겐 강하게 다가왔는데, 지난 며칠간 반복해서 겪은 일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플 줄 알면서도 먹고 먹고 아프다. 먹을까 말까의 기로에 서서 대부분 ‘먹는다’를 택했던 나는 며칠 후의 output보다 당장 확실한 input이 중요했기에 그것을 선택했고, 응당한 결과를 받았을 뿐이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힘든 결과를 반복하지,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유는 먼 곳이 아닌 내 안에 있었다. (몰랐지만) 내가 한 선택이고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인 거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달리 보자면, 인간은 어떤 부분에서는 일관성 있는 선택을 한다는 말로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같은 실수를 한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기를, 당신이 한 뚝심 있는 선택의 결과다.
by. 김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