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 반할 확률

가꿈바꿈 11호 (18.08,27)

by 김꿈

생각한 것: 태풍 '솔릭'
반에 반할 확률




폭염에 찌들었던 올여름, 날마다 맑은 날씨였지만 언제나 뜨거웠고 숨이 막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더울 건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언론은 한목소리로 ‘2012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매미급 태풍이 온다!’는 속보를 냈다. 태풍이라는 글자는 무섭지 않아도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었던 태풍 매미는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태풍 매미가 지나갈 때, 집에 혼자 있던 김꿈은 유리 창문이 부서질까 두려워 학원도 못 가고 창문만 보고 있었었다. 그런데 매미급 태풍이 찾아온다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녀석이 오는 걸까? 2018년 여름, 찌는 듯한 폭염부터 태풍까지, 바람 잘 날 없는 한반도였다.

태풍 솔릭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마음도 나의 마음과 같은 듯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는 ‘태풍 솔릭 경로’였고 메인 기사는 먼저 태풍이 덮친 제주도에서 바람에 휩쓸려 관광객 여성이 사라졌다는 뉴스였다. 수도권에 태풍이 지나간다고 예보한 날은 25일 금요일이었다. 유독 빽빽하게 잡아두었던 금요일의 일정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와 같은 이상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8월 23일 목요일, 서울 교육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휴교령을 선포했다.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도 금요일 기상 변화로 1시까지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태풍이 심각하긴 심각하구나, 걱정하다가 와우!!!!!!!!하고 소리를 질렀다. 일전에 금요일 오후 반차를 제출했었던 나는!!!! 지연 출근 덕분에 금요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연가원을 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이득- 태풍 덕분에 반차를 내고 하루 온전한 휴가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원래 반차를 내고 가야 했던 특강도 태풍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예! 신난다!

태풍 솔릭 덕분에 늦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약속 시각 전까지 마음 놓고 뭉그적거릴 수 있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기에 나의 일상에 이렇게 행복한 변화를 주는지, 날씨에 대한 걱정과 태풍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확인해볼 수 있다는 기대는 풍선처럼 커졌다.

24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벽기도를 다녀온 엄마에게 날씨가 어떠냐고 물었다. 비만 조금 흩날리던데?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어났던 시각은 8시, 태풍이 9시에 오나 보다 생각했다. 9시에도 비가 많이 안 오길래 아직 인가? 싶었다. 시간이 흘러도 10시에도, 12시에도, 3시에도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은 오지 않았다. 온종일 흩날리는 듯한 비만 올 뿐이었다.

기상청이 또 틀렸다. 태풍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서 다행이었지만, 그들이 주장한 예측이 틀렸던 것은 맞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보에 오히려 수혜를 입은 사례지만, 기사의 댓글을 읽어보니 과일 도매상을 운영하는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과일을 헐값에 팔아버렸는데 이게 무엇이냐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강하다고 예측되었던 태풍 솔릭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예측’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매일 아침에 확인하는 일기 예보도, 심장을 부여잡고 고민했던 하트시그널2의 러브라인 예측도, 처음 만나는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아닐까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세우는 가설도 - 모두 절반의 확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맞거나 혹은 틀리거나.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세우는 가설도
모두 절반의 확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맞거나 혹은 틀리거나."



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전보다 예측을 잘할 수 있게 되곤 한다. 나의 이전 사례, 주변인의 경험담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더욱 잘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듯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경험을 남기고 가는데 대다수는 '이러지는 말아야지.'라는 교훈들이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늘면 늘수록 현상 유지를 추구하게 되기 쉽다. 아마 나도 모르게 이전의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것이 추가된다고 해도 피곤해지기만 한다는 예측을 한 것일 테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하는 예측이 맞을 확률은 50%뿐이라는 거다. 비록 틀릴 확률도 50%이긴 하지만. 이 생각을 하니 안될 것이라고 포기했던 지난날의 도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나는 100%의 확률로 안될 것을 예측했지만 뭐 따져보면 50대 50이었던 거다.

요즘 안정을 추구하는 선택으로 내일도, 일주일 후도, 한 달 후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되는 편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 감정 기복도 없고, 심심한 나날들. 별일 없는 매일은 포기로 이룰 수 있었다. 귀찮고 성가신 것은 해보지 않고 안될 것이라 예측하고 빠르게 포기해버렸기에 가능한 안정이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꽤 두려우면서 설레는 일이다. 다 안될 거로 생각하지 말고 인생을 도전적으로 살아보기를. 맞다. 이 글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by. 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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