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지 않을 준비됐나요?

가꿈바꿈 13 (18.09.10)

by 김꿈

생각한 것: 신데렐라와 넘어지기
준비됐나요?



신데렐라 이야기를 아는가. 신데렐라가 파티장에서 운명의 왕자님을 만나고, 제한된 시간 때문에 뛰어가다 두고 간 신발 덕에 왕자님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전설적인 동화,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신데렐라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들 내 인생에 왕자님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벌어졌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뛰었고, 한쪽의 신발이 벗겨졌다.’

한쪽 신발이 벗겨진 신데렐라처럼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건너려고 뛰어가다가 신발 한쪽이 벗겨지고 말았다. 신발이 벗겨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 나의 삶은 동화와 다르다. 동화처럼 호박 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고(...) 맨발로 다시 돌아와 벗겨진 신발을 신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을 뿐이다.

칠전팔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라’라는 사자성어를 아는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의지만 있다면 -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겪어보니 웬걸, 한번 넘어져도 한번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도대체 그런 사자성어는 누가 만든 거람?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라’라는 사자성어를 아는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의지만 있다면 -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겪어보니 웬걸, 한번 넘어져도 한번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약속 시각에 늦을까 뛰어가다가 지하철역 앞의 작은 계단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대로 그 계단에 걸려 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보문역에 잘못한 것은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무릎을 꿇게 되었다. 넘어질 때의 충격이 제법 커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으앙-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다고 한들 나를 달래 줄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큰 처녀는 저기서 뭐하나.’의 표정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일어나 시큰거리는 무릎을 움직여 아무렇지 않은 척 계단을 내려갔다.

뛰어가다 신발이 벗겨지고, 계단에 걸려 넘어졌다. 9월의 첫째 주,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늘 발걸음을 바삐 했었다. 플래너에 욕심껏 적은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의 계획은 쌓여있었지만, 유난히 일과 시간은 일로, 저녁 시간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던 한 주였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휴대전화 게임이, 널브러져서 보던 TV 시청도 죄스러웠다. 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쫓기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해야 하는 것들이 쌓여있자 도무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었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할 일을 미뤘다. 지난 주의 나는 이럴 줄은 몰랐겠지만, 이번 주의 나에게는 세운 계획들을 처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계획이 밀리고 밀리자 하루하루 더욱 숨이 막혀왔다. 욕심껏 세운 계획들은 이미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원래 같았으면 그냥 다음 신호를 기다렸을 깜빡이는 초록 신호등을 건너려 뛰었고 그러다 신데렐라 마냥 한쪽 신발이 벗겨졌다. 2분 후에 도착한다는 지하철 도착 표시를 보며 마음이 다급해져 뛰어가다 지하철과 두 무릎을 인사시켰다. 아이쿵.

맨발로 몇 걸음을 걸으며 좀 수치스러웠고, 넘어져 무릎에 멍은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괜찮다. 현재 김꿈이 반성하는 바는 발에게 '뛸 준비’를 시켜주지도 않은 채 발을 궁지에 몰았다는 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종종 긴 팔을 꺼내입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신발은 언제나 신기 편한 쪼리 슬리퍼였다. 그동안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 그리고 발등을 덮는 얇은 줄을 믿고 바쁘다며 냅다 뛰어다녔다. 제대로 뛸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맨발로 몇 걸음을 걸으며 좀 수치스러웠고,
넘어져 무릎에 멍은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괜찮다.
현재 김꿈이 반성하는 바는 발에게 '뛸 준비’를 시켜주지도 않은 채 발을 궁지에 몰았다는 점이다.





김꿈은 그렇게 일주일 내내 불안해할 거라면 그만큼의 계획을 세우면 안 되었다. 욕심만큼 계획을 이행하고 싶었다면, 세워두었던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거나, 다 놓치기 싫었다면 잠을 줄였어야 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만, 발만 혹사했던 거다.

오늘은 오랜만에 양말을 꺼내 신고 신발장 구석에서 겨울에 신던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몇 걸음 걸어보니 쪼리보다는 걷는 게 훨씬 편하다. 이제 그동안의 편한 삶을 지탱해주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보려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끝에는 원하던 곳에 서 있는 김꿈이 돼 있기를.





by. 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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