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꿈바꿈 16호 (18.10.08)
생각한 것: 연예인
최애에 대하여
나의 구오빠는 동방신기다. 공식 팬클럽 카시오페아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방신기가 나오는 음악 방송은 꼭 꼭 챙겨보았고, 엄마에게 허락을 받는 날이면 공개방송에 가서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면봉신기를 보곤 했다. (그땐 왜 몰랐을까, 집에서 TV로 보는 것이 훨씬 그들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 전자사전에 그들의 영상을 내려받아 독서실에 가 온종일 보기도 하고,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사서 나의 교복 마이에 달기도 했었다.
원래 동방신기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동방신기보다는 오히려 슈퍼주니어나 SS501이 낫다고 생각했다. (라이징 선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 ) 그렇지만 친구들이 다 좋아하는 동방신기를 좋아해야만 했다. 동방신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 대화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지로 좋아하게 된 동방신기. 나의 ‘최애’ 멤버는 쵸라고 불리던, 믹키유천이었다. 귀여운 얼굴에 눈웃음을 치는 그는 순정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서브남주와 같았다.
동방신기는 학교를 벗어나며 자연스럽게 잊혔다.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최애 멤버였던 믹키유천이 성폭력 행위로 고소를 당한 것(!) 그의 행적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화장실에서 강간한 그에게 ‘변기 유천’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거기까지만 하지, 재벌 손녀딸과 연애를 한다며 SNS에 적극 티를 내기 시작한다.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구오빠의 이상행동, 여자친구의 얼굴을 자신의 몸에 문신하는 짓까지 보게 되었다. (그토록 시끄럽게 연애하고, 결혼한다 하던 두 사람은 헤어졌다고 한다. )
똥도 안 쌀 것만 같던 나의 구오빠가 실제로는 그저 속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실체를 모르는 화면 속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행위 자체에 현타를 느꼈다. 생각해보면 철저하게 계획된 브랜드와 같은 연예인의 일부만을 보고 그에게 깊이 빠진다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다시는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요즘 나의 눈에 자꾸 들어오는 꼬마 아이돌이 있다. K팝스타 출연, 프로듀스 101 2 출연. 두 번의 서바이벌을 겪으며 단단해진 가수 정세운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볼 때, 사실 정세운은 그냥 노래하는 애 중 하나였다. 아이돌 그룹에 속하기 위해선 꼭 노래를 잘해야 할 비쥬얼이기도 했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꽃미남 이미지이기보다는, 우리 동네 농구장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이 친숙한 모습이었다.
프듀 경연 중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마지막회에 그에 꽂혔다. 정세운은 다른 연예인과 조금 달랐다. 그는 11등까지인 데뷔 조에 12등이라는 등수로 안타깝게 떨어지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안타깝고, 비극적인 상황이었지만, 12등이라는 등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진심이 보였다. 당황스럽고 슬픈 상황이지만, 담담하게 자신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감사를 표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였으면 벌써 울고불고 난리를 치거나, 12등까지 데뷔하면 안되냐고 떼를 썼을 것이다. 그날 밤, 내실이 남달라보이는 연습생 정세운의 자료를 찾아보느라 밤을 새웠다.
그를 주기적으로 볼 수 있는 방송이 끝난 후에야 ‘입덕’하게 되어 지난날을 후회하고 참 안타까웠는데, 떡밥을 복습하는 동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그가 오랜 연습생 기간을 끝내고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음악 방송에 나와 타이틀 곡 ‘just U~U~U~’를 어색한 표정으로 부르던 신인가수 정세운은 점차 프로가 되어가고 있다. ‘김비서는 왜 그럴까’ OST 참여, ‘정글의 법칙’ 예능 참여, 2번의 앨범 발매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앨범의 타이틀 곡은 ‘20something’은 방황하고 있는 청춘들에 위로가 되는 곡이니 한 번쯤 들어보기를. 그의 노래 중 최애곡은 ‘바다를 나는 거북이’다. 풋풋하고 발랄한 음과 미성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짬이 날 때, 그가 나온 영상을 찾아보거나 출연한 라디오를 찾아 듣는 팬이긴 하지만, 세운 동생은 (정세운, 1997년생)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그가 실제로 보고 싶다거나 우연한 계기로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다. 학창 시절에는 먼발치에서라도 구오빠들이 보고 싶다고 맨바닥에서 10시간씩 기다리고 했었는데. 그와 아는 사이가 되고 싶어 방송국 입사를 꿈꾸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다, 박유천 때문이다.
10대의 최애에게는 110% 사랑의 마음을 가졌다면,
20대의 최애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겠지,
알고보면 너도 그냥 사람이겠지.’ 라며
그를 70%만 좋아하는 방어막을 치고 있다.
10대의 최애에게는 110% 사랑의 마음을 가졌다면, 20대의 최애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겠지,알고보면 너도 그냥 사람이겠지.’ 라며 그를 70%만 좋아하는 방어막을 치고 있다. 30%의 방어막 덕분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있어서 안전하게 나를 지킨다. 지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아무 의심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대로 믿고 들었던 그때가 말이다.
by. 김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