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에 1명은 나를 싫어한다

가꿈바꿈 15호 (18.10.01)

by 김꿈

본 것: 악성 댓글
10명 중에 1명들



호불호가 없는 둥근 성격이지만 병적으로 피하는 것이 있다. 바로 4시 44분에 시계를 보는 것과 4-4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탑승하는 것이다. 나에게 숫자 ‘4들’이란 불행을 나타내는 신호와도 같았다. 4-4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타면 그날 하루가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4시 44분에 시계를 봤던 어떤 날엔 그 시간에 스마트폰을 확인한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4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친구가 전해준 유치한 전설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에게 ‘4시 44분에 시계를 보면 누가 너를 욕하고 있는 것이고, 11시 11분에 시계를 보면 누가 네 생각을 하는 거래.’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당시엔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이후 11시 11분에 시계를 보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4시 44분에 시계를 보면 행여나 누가 나를 욕하는 것 같아 귀가 간지러웠고, 4시 44분에 시계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의 기분을 망치곤 했다.

친구 때문에 4가 싫어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한 귀에 흘려보낸 친구도 분명 있었다. 4시 44분의 전설이 기분 나빴던 이유는 유난히 주변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관한 관심이 큰 편이 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왕이면 누구나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려 노력했다. 조금 더 눈치를 보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번주, 누군가 나를 싫어함을 싫어하는 내가 인터넷상에서 키보드 워리어에게 한마디를 듣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대전편에 나온 청년구단에 다녀오는 김에 리뷰 영상을 편집하여 올렸다. 리뷰의 내용은 ‘청년구단 백종원 솔루션 이후로 맛있어졌다’의 내용이었다. 방송의 힘을 빌려서인지 평소 나오던 수치의 300배가 넘는 3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나의 영상에 6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신기했다. 처음 받는 관심에 기분이 붕-떴다. 그런데 댓글의 내용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예상하기로는, 인터넷 상에서 위생/태도 등의 문제로 욕을 먹었던 청년구단을 옹호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초보 유튜버라서 카메라 구도, 편집 등이 미숙했던 점도 보기 불편했을지 모른다. ‘못생겼는데 왜 예쁜척하느냐’의 비교적 받아들일 만한 댓글부터(못생겼다는 괜찮은데 오나미 닮았다는 말은 좀 슬펐다.), ‘개돼지라서 그런 더러운 식당에 간다.’, ‘같잖은 게 리뷰한다고 설치네’ 식의 악플에 가까운 댓글들이 나의 영상에 적혀져 내려갔다. 조회 수가 올라갈수록 영상에 싫어요를 누르는 숫자도 늘어갔다. (싫어요 수: 60개!)

그들의 댓글은, 싫어요 표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라는 따끔한 회초리질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이하는 어퍼컷과 같았다. 볼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은 듯했다. 속상했다. 나를 위해선 신경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개복치 멘탈의 소유자이기에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당황스러웠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직접 싫어한다는 것,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나를 싫어했던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느낌으로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대놓고 말로 ‘너 싫어!!’ 라고는 하지 않으니 직설적인 발언은 인생 최초로 들어보는 거였다. 또, 근래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렸기에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할 수 있는지, 나의 얼굴을 보고 속이 미식거릴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10명이 모이면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좋아하고,
1명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

내가 ‘1명’들을 신경 쓰는 것만큼 그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10명이 모이면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좋아하고, 1명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 내가 ‘1명’들을 신경 쓰는 것만큼 그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어쩌면 내가 싫었던 것보다는 방송을 보고 난 화를 푸는 도구였거나, 그 사람의 분노한 하루에 대한 분풀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보고 ‘개가 짖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무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근데 잘 안된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어딜 가나 ‘1명들’은 존재할 텐데. 싫어하고 말고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봐야겠다. 어느 정도 수련이 되고 나면 나는 다시 4시 44분에 시계를 보고도 하루를 망치지 않고, 4-4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타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을까?




by. 김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취준생의 일기 : 나의 용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