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꿈바꿈 18호 (18.10.22)
겪은 것: 면역성 피부질환
불치병을 대하는 마음가짐
태어났을 때의 나는 잘 익은 빨간 고구마처럼 익어 있었다고 한다. 갓 태어나서 그런 것이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기다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고.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빨간 아이에게 온 관심이 집중되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줌마들은 나를 빙-둘러싸고 각각의 민간 치료법을 제시했다. 굵은 소금으로 상처 부위를 박박 씻어본 적도 있고(겪어본 아픈 경험 중 Best 3안에 든다.), 피부 생태계를 교란하면 낫는다고 하여 냉탕에 1분 있다가 온탕에 1분 있는 행위를 7세트 반복한 경험도 있다.
이렇게 노력해본들 나의 아토피는 전혀 낫질 않았다. 접히는 부위나 손에 증상이 심했는데, 이때부터 상처 부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계절인 여름을 싫어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나를 놀리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에게 전염병이 있다며 내가 만지는 물건을 만지지 않으려고 했다. 놀리는 것은 괜찮은데, 악당들의 말을 진짜로 믿은 순수한 다른 친구들이 "너 그거 진짜 옮아?"라고 물을 땐 제법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잦은 매점 간식과 입시 스트레스로 피부병은 최악으로 다다랐다. 공부해야 하는데 딱지로 범벅된 손 때문에 펜을 잡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양 병원에 가면 잠시 효과를 발휘하고 더욱 큰 후폭풍을 가지고 오는 스테로이드제 연고만을 처방해준다는 것을 많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한의원에 방문했고, 그날부터 2년 동안 꼬박 한약을 지어 먹었고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다녔다.
한약을 먹게 되면 못 먹는 음식이 많아진다. 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내 몸이 극 열성이라며 열성인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 빵, 쌀밥(밀가루, 흰쌀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은 열성이라 안됨), 케이크, 과자(첨가물이 많은 음식은 또 열성이라 안됨), 튀긴 모든 음식(튀기면 모든 음식이 열성으로 변한다고 함), 치킨을 포함한 닭고기(열성에게 닭고기는 최악, 돼지고기도 안 좋다고 하셨음), 떡볶이(보기에 빨간 음식은 생긴 대로 열성이라 함.), 아이스크림(너무 차가워서 열성이라고 한다.) 등등.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어린 김꿈은 시키는 대로 고통스러운 식단관리를 시작했고, 꾸준히 복용한 값비싼 한약은 제값은 했다. 빨갰던 손 곳곳에 하얀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오래 앓았던 만큼 병세는 천천히 호전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손을 숨기는 일은 사라져갔다.
성인이 된 후 한동안 피부병에 대해 잊고 살았다. 이제 완치된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 완치란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스멀스멀 새로운 피부병이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마다 나를 찾아오고 있다. 바로 ‘한포진’이라는 녀석이다. 처음엔 아토피가 재발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병의 진행 모습이 아토피와는 달랐다. 아토피에서 볼 수 없는 조그마한 기포들이 피부에 투명하게 생기고(없던 환공포증 생길 듯), 기포가 터지며 그 부위는 빨개지고 딱지가 앉고, 터질 때마다 기포는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상처 부위의 뜨거움과 가려움증은 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포진은 주로 손에만, 그리고 간절기에만 온다는 거다. 증세가 심할 때엔 손 곳곳이 갈라져 일상생활이 좀 불편해지긴 하지만 뭐 이 정도면 다행이다. 아토피부터 한포진까지, 면역성 피부질환을 스무 번 넘게 겪으며 그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꽤 의연해졌다. 이 병이 완벽히 나아서 해방되는 꿈은 꾸지 않는다. 어차피 올 거라면 좀 더 늦게 와서, 좀 더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언젠가 지나갈 거다.
언젠가 오늘보다 나아질 거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내 몸이 강하지 않다. '라는 깨달음을 얻고 난 후였다. 태어날 때부터 외부의 병균과 싸우는 군사 병균들이 몸에 많지 않았던 것. 내 몸의 면역력이 낮다는 것을 이제 잘 안다. 사실 몸이 강하지 않은 쪽보다는 약한 쪽에 가까운 거겠지만 내 마음의 편의를 위해 ‘강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포진이를 대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 부위의 보습을 충분히 하며, 언젠가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되뇌는 거다.
언젠가 지나갈 거다. 언젠가 오늘보다 나아질 거다.
by. 김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