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동대표 모드
명절 연휴 전 정신없는 주간이었다. 이렇게 연휴가 있으면 회사도 바쁘지만, 퇴근 후의 나는 더 바쁜 일상이 시작된다. 참석해야 하는 회의들이 몰려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 동대표 회장을 하면서 같은 동의 아파트 회장들이 모여 현안에 대해 공유하고 논의하는 연합회에 참여하고 있고 우리 동의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세 개의 회의가 이번 주에 몰려있었다. 다행히 회의 날짜가 겹쳐지지 않아서 화, 수, 목 3일 연속 퇴근 후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되었다. 19시부터 회의가 시작되어서 23시가 넘어서까지 하기도 하고, 1시간 정도 회의하고 밥 먹고 이야기하다 보면 22시는 훌쩍 넘어버린다.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피곤했던 한주였다.
# 언제나처럼 가장 크게 신경 쓰고 일이 많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정기회의.
이번 달의 주요 현안은 장기수선계획 정기 조정과 태양광 설비 보수, 이지차저 전기차 충전기 단전 관련된 내용이었다.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봐도 어려운 현안들이다. 나는 관련 종사자가 아닐 뿐 아니라 관련된 지식도 전혀 없고 기계치에 숫자에 밝지도 않다. 이런 안건들이 올라오면 2-3주는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 지인 찬스, 지자체 질의 등 온갖 방법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장기수선계획은 아파트 시설물등의 유지관리를 50년 기준으로 연도별 계획하고 그에 맞게 예산을 설정하고 장기수선충당금을 걷어 보수공사 비용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산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리측면에서 필요한 것과 입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취합해서 우선순위로 순서를 정해야 한다.
어떻게든 모두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보수 금액을 낮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그럼에도 예산을 맞출 수가 없다면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포기해야 하는 이유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부터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되어야 한다.
태양광 설비는 입주 때부터 설치되어있었는데 제대로 활용이 안되고 있었던 걸로 확인되고, 그동안 세월은 흘러 수명이 다 해가고 있는 시점에 보수 공사를 하여 활성화를 시킬지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어떤 방향이 더 효율적인지 판단하려면 태양광 모듈부터 인버터, 배전반과 전기 배선 도면까지 다 이해를 해야 한다. 기계치로서는 정말 머리가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모르면 관리소 판단에만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지차저의 문제는 이지차저가 전기료를 미납하면서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기계는 설치되어 있지만 충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열흘이상 되면서 전기차 소유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이 문제는 아파트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전과 이지차저의 문제이지만 입주민들은 아파트에서 나서서 해결해 주길 원한다. 방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청, 구청, 환경부, 환경관리공단, 충전기 설치업체들과 통화하고 정보를 얻는다.
다행히 지금은 전기료를 지불하여 다시 사용이 되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여 대응 방안들을 준비해야 한다.
문과에 외식산업 전공하고 식품업계에 있던 내가 이런 현안들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지만 우리 아파트에 이익이 되고 효율적일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하고 노력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동대표들이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양한 것에 관심 많고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면 한 번쯤 동대표를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정말 많고 많은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