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풍요란 무엇인가

미국 Gen Z가 정의하는 '나' 중심의 삶

by 김동린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넓게 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 Gen Z는 에너지와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풍요를 설계하고 있다.



1. 들어가며 — '더 많이'에서 '더 깊이'로


미국의 부모 세대는 더 큰 집, 더 넓은 인맥, 더 많은 소비를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 팔로워가 많을수록, 파티에 자주 나갈수록, 브랜드 로고가 눈에 띌수록 '잘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Gen Z는 이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2025년 McKinsey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Gen Z의 73%가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Deloitte의 2025 글로벌 밀레니얼·Gen Z 서베이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일과 삶의 균형"을 직업 선택의 최우선 기준으로 꼽았다. 이전 세대가 '양적 확장'을 통해 불안을 해소했다면, Gen Z는 '질적 집중'을 통해 안정을 확보한다.


이것은 나태함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학자금 대출, 기후 위기, 팬데믹의 잔상 속에서 자란 세대가 도달한 영리한 생존 전략이다. 그들은 네 가지 영역 — 공간, 관계, 기술, 소비 — 에서 일관되게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줄이되, 깊이를 더한다.


2. 공간과 일상 — 취향 방과 스테이인 컬쳐


방은 침실이 아니라 정체성의 물리적 표현이다


Gen Z의 방은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TikTok에서 #RoomTour 해시태그는 누적 조회 수 500억 회를 돌파했고, #AestheticRoom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LED 스트립 조명이 천장을 따라 흐르고, 프로젝터가 벽에 은하수를 투사하며, 선셋 램프가 방 전체를 골든아워로 물들인다. 여기에 아로마 디퓨저, 블루투스 스피커, 빈티지 포스터가 더해져 하나의 감각적 생태계가 완성된다.


주목할 점은 이 공간 설계가 단순한 인테리어 취미를 넘어 정체성 표현의 행위라는 것이다. "코티지코어(Cottagecore)" 방은 자연과 느린 삶을 동경하는 자아를, "다크 아카데미아(Dark Academia)" 방은 지적 탐구를 지향하는 자아를, "Y2K 레트로" 방은 향수와 유희를 중시하는 자아를 공간으로 구현한다. Havenly의 2024년 인테리어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의 76%가 "내 방이 나의 성격을 반영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이 비율은 베이비부머 세대(41%)의 거의 두 배다.


스테이인 컬쳐: 외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택을 선택하는 것


"나가지 않는다"는 것과 "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르다. Gen Z의 스테이인 컬쳐(Stay-in Culture)는 후자에 가깝다. 금요일 밤에 클럽 대신 넷플릭스와 캔들을 택하고, 브런치 카페 대신 집에서 직접 만든 마차 라테와 시나몬롤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미국인 사이에서 "홈바디(homebody)"를 자처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American Time Use Survey에 따르면, 15~24세 미국인의 여가 시간 중 가정 내 활동 비율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2024년에 약 12% 증가했다. 이 증가분이 팬데믹의 잔여 효과인지 구조적 전환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Gen Z 사이에서 "집에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인식 전환은 확실히 일어났다.


홈바디 이코노미(Homebody Economy)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다. 홈 프래그런스 시장은 2025년 기준 글로벌 약 128억 달러 규모이며 연평균 5% 이상 성장 중이다. LED 조명, 프로젝터, 사운드 머신 같은 '분위기 설계 도구' 시장은 스마트홈 카테고리 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하위 세그먼트 중 하나다.


Gen Z에게 방은 외부 세계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물리적·정서적 안식처다. 그리고 이 안식처를 기반으로 그들은 관계의 방식도 재편한다.


3. 관계와 소통 — 마이크로 소셜라이프


친한 친구는 줄고, 관계의 밀도는 올라간다


미국 사회과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트렌드가 있다. 미국인들의 '절친한 친구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Survey Center on American Life(2021)의 조사에 따르면,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답한 미국인 비율은 1990년 3%에서 2021년 12%로 네 배 증가했다. 전체 세대에 걸친 현상이지만, Gen Z는 이 흐름에 저항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했다.


Gen Z 사이에서 유행하는 개념이 "소셜 배터리(Social Battery)"다. 사회적 교류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유한하며, 충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단순한 밈(meme)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 패턴으로 나타난다. 대규모 파티 초대를 거절하고, 대신 2~3명의 친한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소모임을 선호한다. BetterHelp의 2024년 설문에서 Gen Z 응답자의 62%가 "큰 모임보다 소규모 만남이 정신 건강에 더 좋다"고 답했다.


마이크로 소셜라이프의 구조


마이크로 소셜라이프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의도적 선별. Gen Z는 소셜 미디어에서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 에너지를 투입하는 관계는 엄격하게 골라낸다. Instagram의 "Close Friends" 스토리 기능이 상징적이다. 모든 팔로워가 아닌, 선택된 소수에게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둘째, 깊이 중심의 교류. 피상적인 네트워킹보다 "deep talk"을 선호한다. Bumble BFF(친구 찾기 앱)의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Gen Z 사용자의 매칭 사유 1위는 "깊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으며, "넓은 인맥 구축"은 최하위였다.


셋째,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유연한 혼합. FaceTime으로 2시간 통화하고, 다음 주에 직접 만나 산책하는 식이다. "함께 있되 각자 할 일을 하는" 병렬적 교류(parallel socializing) — 같은 공간에서 각자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 도 하나의 사교 형태로 자리 잡았다.


외로움의 역설


그렇다면 관계를 줄인 Gen Z는 더 외로운가?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2024)의 분석에 따르면, Gen Z의 외로움 보고율은 다른 세대보다 높지만, 이는 "외로움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 건강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문화 덕분에, Gen Z는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능동적으로 관리한다. 관계의 양은 줄었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정서적 안전감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4. 기술과 감각 — 슬로우 테크와 사운드 테라피


디지털 네이티브가 디지털을 거부하다?


Gen Z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다. 그런 그들이 역설적으로 기술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부'보다 '속도 조절'에 가깝다.


가장 상징적인 현상이 덤폰(Dumb Phone) 트렌드다. 스마트폰 대신 통화와 문자만 되는 기본 휴대폰을 사용하는 움직임이다. The Light Phone, Nokia 3210 재출시 모델 같은 미니멀 폰이 Gen Z 사이에서 주목받았다. CNBC(2024)에 따르면 미국 내 덤폰 판매는 2023년 대비 2024년에 약 25% 증가했으며, 구매자의 주요 연령대가 18~27세였다. "인스타를 계속 확인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라는 것이 가장 흔한 구매 동기다.


덤폰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크린타임 의식적 관리는 Gen Z의 보편적 습관이 되고 있다. Apple의 스크린타임 리포트를 매주 확인하고, 특정 앱에 사용 시간 제한을 거는 행위가 일종의 자기관리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Common Sense Media(2024)의 조사에서 미국 10대의 47%가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응답했다.


사운드 테라피: 청각으로 뇌를 쉬게 하다


스크린을 줄이는 동시에 Gen Z가 적극 수용하는 감각 도구가 있다. 소리다.


브라운 노이즈(Brown Noise)는 2022년경 TikTok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백색 소음(white noise)보다 낮고 깊은 주파수의 이 소리는 "뇌를 감싸는 담요 같다"고 묘사된다. #BrownNoise 해시태그는 TikTok에서 10억 회 이상 조회됐다. ADHD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 보고가 확산의 핵심 동력이었다(학술적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다).


Lo-fi 비트(Lo-fi Beats)는 이미 하나의 문화 장르다. YouTube의 "lofi hip hop radio - beats to relax/study to" 채널은 구독자 1,400만 명을 넘겼다. Spotify에서 "lo-fi" 관련 플레이리스트의 월간 청취자 수는 수천만 명 규모다. Gen Z에게 lo-fi는 음악이 아니라 작업 환경의 인프라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도 같은 맥락이다. 속삭임, 종이 넘기는 소리, 빗소리 같은 미세 자극을 통해 이완 반응을 유도하는 콘텐츠다.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사운드 테라피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20억 달러 규모이며, 2030년까지 연평균 8%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


슬로우 테크: 기술을 느리게 쓰는 기술


Gen Z의 기술 사용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슬로우 테크(Slow Tech)"다. 기술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알림을 끄고, 흑백 화면 모드를 설정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은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는 식이다.


이것은 '취향 방'과도 연결된다. 방을 감각적 안식처로 설계한 Gen Z가 그 공간 안에서 디지털 자극까지 통제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브라운 노이즈를 틀고, LED를 따뜻한 색으로 맞추고, 스마트폰은 도어 밖에 두는 — 이 루틴이 Gen Z식 "뇌 쉬는 시간"이다.


5. 소비와 경험 — 조용한 소비와 마이크로 여행


조용한 소비: 로고를 지우다


2023년부터 패션·소비 트렌드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가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다.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 소재와 핏으로 품질을 드러내는 소비 방식이다. HBO 드라마 의 등장인물들이 입은 Loro Piana, Brunello Cucinelli 같은 브랜드가 이 트렌드를 대중화했지만, Gen Z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Gen Z의 버전은 "언더컨섬션 코어(Underconsumption Core)"다. 2024년 TikTok에서 급부상한 이 트렌드는 "적게 사고, 오래 쓰고, 보여주지 않는다"를 핵심으로 한다. 반쯤 사용한 립밤, 수선해서 계속 입는 청바지, 리필 가능한 물병 — 소비하지 않는 것 자체를 콘텐츠로 만드는 역설적 움직임이다.


#UnderconsumptionCore는 TikTok에서 수억 회 조회됐다. 이 흐름의 앞단에는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 트렌드가 있었다. 2023년 초 TikTok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이 제품 사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플루언서 산업의 과소비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Deinfluencing 해시태그는 2024년 1월 기준 누적 13억 회 이상 조회됐다.


Gen Z의 소비 변화를 단순히 "돈이 없어서"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다. 틀리지 않지만 불완전하다. 경제적 제약은 촉발 요인이지만, 이 세대는 제약을 가치관으로 전환시켰다. "살 수 없어서 안 사는 것"이 아니라 "사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으로 프레이밍을 바꾼 것이다. First Insight(2024)의 조사에서 Gen Z의 73%가 "지속가능한 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은 이 전환을 뒷받침한다.


마이크로 여행: 멀리 가지 않아도 여행이다


여행의 정의도 바뀌고 있다. Gen Z 사이에서 부상한 마이크로 여행(Micro Travel)은 1~3일의 짧은 기간, 차로 2~3시간 거리의 근거리 목적지를 탐험하는 방식이다. 장거리 해외여행 대신 내 동네의 숨은 카페, 옆 도시의 주말 마켓, 국립공원의 당일 하이킹을 선택한다.


American Express Travel의 2024년 조사에서 Gen Z 여행자의 57%가 "긴 여행보다 짧고 자주 떠나는 여행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Hilton의 2025 Trends Report에서도 "마이크로케이션(Micro-cation)"이 주요 트렌드로 꼽혔다. 이 변화에는 재정적 이유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동인은 "목적지보다 경험"이라는 가치 전환이다.


마이크로 여행의 핵심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매일 출퇴근하는 도시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걷고, 살고 있는 동네의 식당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발견한다. 이것은 취향 방에서 시작된 '내 반경 안에서의 풍요' 원칙이 외부로 확장된 형태다.


6. 나가며 — 질적 풍요라는 생존 전략


취향 방, 마이크로 소셜라이프, 슬로우 테크, 조용한 소비, 마이크로 여행 — 이 다섯 가지 키워드는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다. 선택적 집중.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전제 아래, 어디에 쓸 것인지를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태도다.


이것을 "욕망의 축소"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Gen Z의 관점에서 이것은 축소가 아니라 정밀화다. 넓게 퍼뜨리는 대신 좁게 깊이 파는 것. 많이 가지는 대신 적게 가지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관계를 넓히는 대신 깊이를 더하는 것. 멀리 떠나는 대신 가까이서 발견하는 것.


물론 이 라이프스타일이 유토피아는 아니다. 소셜 배터리를 핑계로 고립이 심화될 수 있고, 조용한 소비가 또 다른 형태의 과시 — "안 사는 나를 보여주는" — 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마이크로 여행이 구조적 여행 불평등을 포장하는 수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Gen Z가 보여주는 방향은 주목할 만하다. '더 많이'가 곧 '더 좋게'였던 시대가 저물고, '더 깊이'가 곧 '더 풍요롭게'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것은 한 세대의 취향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묻고 있는 질문이다 — 당신에게 풍요란 무엇인가.




참고 자료:

McKinsey & Company, Gen Z Consumer Survey (2025)

Deloitte, Global Millennial & Gen Z Survey (2025)

Survey Center on American Life, The State of American Friendship (2021)

Common Sense Media, Teens and Screen Time Report (2024)

American Express Travel, Global Travel Trends Report (2024)

Grand View Research, Sound Therapy Market Size Report (2024)

First Insight, The State of Consumer Spending: Gen Z Shoppers Demand Sustainable Retail (202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컴퓨터를 제대로 쓰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