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학과, 어떻게 골라야 할까

'AI학과 갈 거야'라는 말의 무게

by 김동린


"나 AI 공부할 거야."


요즘 이 말을 하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대학들도 앞다퉈 AI학과를 만들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42개 대학이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신설했고, 주요 대학들은 AI학과 정원을 늘리는 추세다 — 중앙대는 40명에서 56명으로 증원했다. 서울대와 KAIST는 AI 대학원 확대를 넘어 AI 단과대학 설립까지 예고한 상태다.


문제는, 'AI학과'라는 이름이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어떤 학교는 컴퓨터공학에 딥러닝 과목 몇 개를 얹은 수준이고, 어떤 학교는 수학·통계 기반의 연구 중심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같은 간판이라도 메뉴판이 다르다.


AI를 '하나의 분야'로 생각하고 진학하면 당황하기 쉽다. 수십 가지 갈림길 앞에 서는 거다


AI는 하나가 아니다 — 세부 분야 지도


'AI 한다'는 말은 '요리 한다'는 말만큼 넓다. 한식을 할 건지, 양식을 할 건지, 제과를 할 건지에 따라 배워야 할 것이 완전히 다르듯, AI도 세부 분야에 따라 필요한 역량과 진로가 갈린다.


큰 그림부터 보면 AI는 가장 넓은 우산이다. 그 아래에 머신러닝(ML,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기술)이 있고, 머신러닝의 한 갈래로 딥러닝(DL,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다층 학습)이 있다. 요즘 화제인 ChatGPT나 Claude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딥러닝의 한 응용 분야다.


포함 관계를 정리하면 이렇다.


- AI(인공지능) — 가장 큰 우산

ㄴ ML(머신러닝) — 데이터에서 패턴 학습

ㄴ DL(딥러닝) — 심층 신경망 기반 학습

ㄴ NLP / LLM — 자연어 처리, 거대언어모델

ㄴ CV — 컴퓨터 비전, 이미지·영상 인식

ㄴ RL — 강화학습, 시행착오로 최적 행동 학습



핵심은 "AI학과에 가겠다"고 말하기 전에, 이 지도 위에서 내가 어디쯤에 끌리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가장 핫한 건 LLM —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현재, 2024~2026년 AI 업계의 채용 시장은 LLM과 생성형 AI에 집중되어 있다. AI/ML 관련 채용 공고는 2020년 대비 400% 이상 증가했고, 그 중 LLM과 MLOps(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배포·운영하는 기술) 역량을 요구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컴퓨터·정보 연구 분야의 일자리가 2024~2034년 사이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가장 핫하다고 볼 수 있는 분야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결국 LLM도 ML과 DL 위에 서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Transformer(트랜스포머, LLM의 핵심 구조)를 이해하려면 딥러닝을 알아야 하고, 딥러닝을 이해하려면 머신러닝의 기본 개념이 필요하다. 기초가 탄탄한 사람은 트렌드가 바뀌어도 적응할 수 있지만, LLM만 표면적으로 배운 사람은 다음 패러다임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LLM 밖에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분야가 많다. 자율주행은 CV와 RL의 조합이고, 신약 개발은 ML 기반의 분자 구조 예측이 핵심이며, 로보틱스는 RL과 CV가 동시에 필요하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AI의 기초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면 AI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가?


기초과학(연구) 쪽이라면: 수학·통계가 강한 대학원 중심 커리큘럼을 찾아야 한다. 논문을 읽고 쓰는 훈련이 핵심이다.

응용·제품 개발 쪽이라면: 프로젝트 경험, 산학협력, 인턴십 기회가 많은 곳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서비스를 만들어본 경험이 이력서를 채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개인 성향의 문제다. 정답은 없다.


그런데 이 '기초 vs 응용' 구도에는 하나의 가정이 깔려 있다. AI를 하려면 코딩과 수학을 해야 한다는 전제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코딩만이 답이 아니다 — AI가 필요로 하는 다른 전공들


AI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부 코딩을 하는 건 아니다.


Claude를 만든 Anthropic을 보면 이게 선명해진다. Anthropic의 CPO 마이크 크리거(Mike Krieger)는 "좁은 기술 역량보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고 밝혔다. Anthropic은 AI 안전·윤리·정책 분야에서 철학이나 법학 배경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고 있다. Anthropic Fellows Program은 PhD, ML 경험, 논문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고, 실제로 물리학·수학·사이버보안 등 다양한 배경의 펠로우가 배출되었다.


AI 시대에는 언어학 전공자의 수요도 늘고 있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게 만드는 일에는, 언어의 구조를 깊이 아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NLP 업무에 언어학 전공자를 채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흐름은 입시 데이터에서도 보인다. 2026학년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수시 경쟁률은 4.31대 1로, 2023년(8.86대 1)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반면, 경북대 철학과 정시 경쟁률은 15.6대 1로 전체 학과 중 가장 높았다. 한국외대가 2024년 신설한 'Language & AI 융합학부'의 수시 논술 경쟁률은 첫해 133.14대 1에서 올해 183.71대 1까지 치솟았다.


이게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AI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수록, "이 기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만큼 "이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커지고 있다. AI 윤리, AI 거버넌스, AI 정책 — 이 분야는 코딩 실력보다 인문학적 사고력이 핵심이다.


AI학과가 아니어도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보자. "AI 회사에 취업하려면 AI학과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뒤집는 흐름도 있다.


업계에서 점점 더 주목받는 관점은 AI 전문가가 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기존 산업 전문가가 AI를 배우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한 핀테크 데이터 과학자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블록체인 신용 평가 ML 경쟁에서, 딥러닝이나 블록체인 경험 없이도 6년간 쌓은 핀테크 도메인 지식만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도메인 전문성이 알고리즘적 복잡성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라는 게 그녀의 결론이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도메인 전문가가 AI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전문 분야 정확도가 최대 30% 향상되고, 의료 영상에서는 오탐(거짓 양성)이 40%까지 줄었다. 반대로, 도메인 지식 없이 AI만 들고 들어간 프로젝트의 실패율은 80~90%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왜 그런 걸까. AI 엔지니어는 모델을 만들 수 있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건 그 분야를 아는 사람이다. 의료 AI에서 진단 정확도를 높인 건 의사가 AI의 판단 과정을 이해하고 개입했을 때였고, 금융 AI에서 사기 탐지 오경보를 줄인 건 수사관 출신이 모델 설계에 참여했을 때였다. 2024년 Applied Sciences에 발표된 연구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 도메인 지식과 AI의 전략적 통합이 혁신에 필수라는 것이다.


이게 진학 선택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꼭 AI학과를 나와야 AI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의학, 법학, 금융, 생물학, 제조 —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전문성 위에 AI를 얹는 사람이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오히려 "AI는 전문성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키는 것"이라는 말이 업계의 공감대다.




학과 고를 때 진짜 봐야 할 것들


구체적으로, 학과를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까.


첫째, 이름이 아니라 커리큘럼을 보자. '인공지능학과', 'AI융합학과', 'AI공학과' — 이름은 비슷해도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전공 과목이 있는지, ML/DL/NLP 등 세부 분야 중 무엇에 집중하는지, 수학·통계 비중은 어떤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교수진의 연구 분야를 확인하자. 학과의 실질적인 방향은 교수진이 결정한다. 내가 NLP에 관심 있는데, 교수진이 전부 CV(컴퓨터 비전) 전문가라면 원하는 지도를 받기 어렵다.


셋째, 실무 기회가 있는지 보자. 산학협력 프로그램, 인턴십, 캡스톤 프로젝트 같은 실무 경험 기회는 취업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특히 응용 쪽으로 가고 싶다면, 이론만 가르치는 곳보다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는 곳이 낫다.


넷째, 학사 vs 석박사를 고려하자. AI 분야는 석박사의 메리트가 큰 영역이다. 학사만으로도 취업은 가능하지만, 전공을 살려서 연구나 핵심 개발 업무를 하려면 대학원 진학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AI 자체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 분야라, 독자적으로 논문을 읽고 새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름만 AI인 학과에 주의하자. 실질적인 교육 역량 없이 이름만 바꾼 학과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설 학과라면 특히 실제 연구 환경, GPU 등 컴퓨팅 자원, 산업체 연계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학과 홈페이지에 연구실 목록이나 장비 현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면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AI 공부의 첫 단계는 코딩이 아니다


AI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첫 번째로 할 일은 파이썬을 깔거나 수학 교재를 펴는 게 아니다. 학과의 간판이 아니라 메뉴판을 확인하고, "나는 AI의 어떤 면에 끌리는가?"를 먼저 답하는 것이다.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게 좋은가? ML, 데이터 사이언스 쪽

언어를 이해하는 AI를 만들고 싶은가? NLP, LLM 쪽

눈으로 보는 걸 AI에게 가르치고 싶은가? CV 쪽

로봇을 움직이게 하고 싶은가? RL, 로보틱스 쪽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싶은가? AI 윤리, 정책 쪽 (철학·법학·사회학 배경도 길이 있다)

AI가 언어를 더 잘 이해하게 돕고 싶은가? NLP 쪽 (언어학 전공자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미 다른 분야에 전문성이 있거나, 관심 분야가 따로 있는가? 그 분야 위에 AI를 얹는 것도 강력한 경로다


앞서 본 것처럼, Anthropic은 철학 전공자를, 빅테크는 언어학자를 찾고 있다. 도메인 전문가가 AI를 익혀서 더 큰 성과를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코딩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 질문 없이 "요즘 AI가 핫하다니까"로 학과를 고르면, 4년 뒤에 "이걸 왜 배운 거지?"라는 후회가 올 수 있다.


갈림길이 많다는 건, 내게 맞는 길도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참고자료


참고 자료


[1] AI타임스, "대학가 인공지능학과 설립 열풍…올해 새로 생긴 42개대는 어디?", 2024.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332


[2] 조선일보, "AI시대, 컴공 아닌 철학·언어학 뜬다", 2026. https://v.daum.net/v/20260106005705548


[3] 조선일보, "한국외대 Language & AI 융합학부 경쟁률", 2026. https://v.daum.net/v/20260106005705548


[4] Final Round AI, "Anthropic CPO Admits They Rarely Hire Fresh Grads as AI Takes Over Entry-Level Tasks", 2025. https://www.finalroundai.com/blog/anthropic-cpo-mike-krieger-on-ai-replacing-entry-level-jobs


[5] Anthropic, "Anthropic Fellows Program for AI safety research", 2026. https://alignment.anthropic.com/2025/anthropic-fellows-program-2026/


[6] Pluralsight, "AI career paths: 2026 job guide", 2026. https://www.pluralsight.com/resources/blog/ai-and-data/ai-career-guide-2025


[7] Medium, "Top AI & ML Jobs Dominating 2026", 2026. https://medium.com/@santosh.rout.cr7/top-ai-ml-jobs-dominating-2026-roles-and-skills-you-need-0aac6a340c23


[8] 다음뉴스, "테슬라서 AI석학 파격 영입…선두 카이스트 추격하는 대학들", 2025. https://v.daum.net/v/20251225180301819


[9] 에듀인사이트, "2025 인공지능 학과 대학 순위 & 전망", 2025. https://exitbasic.com/2025-%EC%9D%B8%EA%B3%B5%EC%A7%80%EB%8A%A5-%ED%95%99%EA%B3%BC-%EB%8C%80%ED%95%99-%EC%88%9C%EC%9C%84-%EC%A0%84%EB%A7%9D-ai-%EB%AF%B8%EB%9E%98%EB%A5%BC-%EC%9D%B4%EB%81%8C-%ED%95%99/


[10] 에듀레이나, "AI 시대, 문과생에게 열려 있는 미래 유망 학과 TOP 5", 2026. https://edureina.com/entry/AI-%EC%8B%9C%EB%8C%80-%EB%AC%B8%EA%B3%BC%EC%83%9D%EC%97%90%EA%B2%8C-%EC%97%B4%EB%A0%A4-%EC%9E%88%EB%8A%94-%EB%AF%B8%EB%9E%98-%EC%9C%A0%EB%A7%9D-%ED%95%99%EA%B3%BC-TOP-5


[11] BLS, "Computer and Information Research Scientists", 2024. https://www.bls.gov/ooh/computer-and-information-technology/computer-and-information-research-scientists.htm


[12] 교육을 비추다, "중앙대 2026학년도 수시모집, AI학과 증원", 2025. https://www.kyobit.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


[13] Towards Data Science, "My biggest lesson was realizing that domain expertise matters more than algorithmic complexity", 2025. https://towardsdatascience.com/my-biggest-lesson-was-realizing-that-domain-expertise-matters-more-than-algorithmic-complexity/


[14] Prolific, "How domain experts transform generative AI", 2025. https://www.prolific.com/resources/how-domain-experts-transform-generative-ai-evidence-based-benefits


[15] Applied Sciences (MDPI), "AI in Context: Harnessing Domain Knowledge for Smarter Machine Learning", 2024. https://www.mdpi.com/2076-3417/14/24/11612


[16] 제주일보, "AI 시대, 도메인 전문가의 힘", 2025.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7476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어는 토큰 사용량은 영어의 3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