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돌아온 미국 시골 살이를 시작하며
(하원 픽업까지)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오랜만이다. MBTI 검사에서 E가 나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가 너무도 그려왔던 자유의 시간-맥주를 들고 일기장 앞에 앉은 이 시간.
미국 시골 주택의 나무 식탁 귀퉁이에 나만의 서재를 차려 놓고 앉으니 창 너머로 너른 풀밭과 이웃집들의 뒷마당이 펼쳐진다. 천장이 높은 집에 저음이 잘 나오는 보스 스피커로 내가 좋아하는 어쿠스틱 인디 음악 뮤직스테이션을 걸어놓고, 13년 전에도 썼던 양키캔들 매킨토시향 초를 켜놓았다. 졸업식도 가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난 이곳을 다시 와 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삶에서 마주하는 우연이란 게 여전히 참 신기하다.
다시 이곳에 온다고 했을 때 처음엔 믿지 않았다. 에이 설마. 하고 많은 현장 중에 어떻게 와이프 모교가 있는 미국 시골 현장을 발령받아? 말도 안 되잖아. 서배나에 간댔다가, 마리에타에 간댔다가, 파타야에 간댔다가, 애리조나에 간댔으니 또 바뀌겠지. 그런데 웬걸, 정말로 왔다.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이 기대됐었다. 내 20대 초반을 온전히 보낸 곳, 참 많이도 울고 웃었던 곳. 신기한 인연은 어쩌면 정말 특별할 것만 같았다. 13년 만에 결국 이 동네에 들어서니 고속도로에서 빠지는 출구에서부터 너털웃음이 났다. 말도 안 돼. 스물한 살에 첫 수업 교실도 못 찾고, 숙제도 못 알아들어서 화장실에서 울었던 그곳에, 마흔이 되어 남편을 따라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온다고? 웃기지도 않네.
13년 만에 들어선 전공 건물은 그대로였다. 퀘퀘한 공조는 아직도 필터 교체주기가 그대로인 건지 늘 갑갑하던 계단실 공기 냄새가 그때와 꼭 같아서 헛기침과 헛웃음이 동시에 났다. 1층 구석진 곳에 숨겨진 자판기 메뉴도 여태 그대로라 쉬는 시간마다 항상 사 먹었던 스트로베리 숏케이크 과자를 한 봉지 사서 세 살 난 딸과 나눠 먹었다.
우리 과가 쓰던 2층의 복도 냄새도. 굳게 닫힌 전공 스튜디오 안 제도 책상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곳곳에 디스플레이 모니터가 몇 개 달린 것 외에는 바뀐 게 없었다. 주말 저녁인데 스튜디오 안에서 여전히 딴짓과 과제를 번갈아 하는 후배들의 옷차림과 표정까지도... 그때의 우리와 꼭 같네.
향수에 젖어 감격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슬퍼졌다.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고 아팠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올랐다. 왜곡된 기억 속엔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즐겁고 잘 나갔던 기억이 위주였는데, 다시 그 장소에 와보니 저 깊은 곳에 숨겨져 꺼내보이지 않았던 먼지 쌓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방황하고 아파하던 스물 언저리 시절의 멍에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잊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추억은 그득그득 묻어 있었지만, 굳이 남편에게도 열심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혹여 내가 그 시절 옛사랑의 추억에 잠길까 봐 경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 마흔이 되고 보니 그것들은 이제 너무도 희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어떤 재미도, 의미도 없어. 그저 그 시절의 외로웠던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당신도 비슷한 장소에 가면 알게 될 거야.
허울 좋은 유학생의 나쁘지 않은 스펙의 한 줄로 그 기억들을 치부하고 살아가는 동안 그것들은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저 멀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된 운명은 어쩌면 치유를 위한 기회인 걸까? 아니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당분간은 그저 익숙한 외딴곳에서 쉼과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