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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Feb 14. 2023

4시간의 피 말리는 기다림, 제발 집에 보내줘....

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2)

4시간의 피 말리는 기다림, 제발 집에 보내줘....

아니, 쿠바에서 확진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의료진이 코로나 양성을 알리는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일단은 우리를 검사하는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황급히 마스크를 고쳐 쓰셨고, 검사를 했던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금지령이 떨어졌다. 약국에서 약만 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터라 가방에 있는 것은 손소독 티슈와 손 소독제, 얇은 가디건과 물병, 그리고 약간의 돈뿐. 보조배터리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실수로 케이블을 두고 왔고, 내 휴대폰 배터리는 10%, 일행은 20% 안팎으로 남아 있었다.


나를 가장 당황하게 했던 것은, 이런 사례를 살면서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쿠바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지? ‘남미 사랑’ 카페를 비롯해 한국 포털을 샅샅이 뒤졌지만 쿠바에서 코로나에 확진된 한국인이 남긴 글은 단 한 개도 보지 못했고, 영어로 구글을 뒤져도 쿠바에 여행을 왔다가 확진된 사례는 나오지를 않았다. 머릿속에서 짜낼 수 있는 온갖 검색어를 한국어와 영어와 스페인어로 몽땅 검색해 봐도 아무 정보가 없을 때 느껴지는 그 막막함이란.


앞으로의 상황이 예측되지 않으니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때까지는 사실 그래봤자 자가격리겠지 싶었다. 한국은 이미 격리 기간이 7일로 줄어들었다고 했고, 캐나다는 5일만 집에 머물면 되었기에 쿠바도 느슨해졌지 않았을까?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인터넷에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건 결국 내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최초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의사가 다음에 우리에게 어떤 지시를 할지를 기다렸다.  

 

뭔가 일이 커져간다!


우리만 놔두고 다 나가버린 작은 진료실

그러나 자가격리 주소만 확인하고 보내줄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나를 담당했던 의사는, Cira Garcia에서는 코로나 환자는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PCR 검사를 통해 확실히 양성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일단 그 병원까지 우리는 앰뷸런스로 이동해야 하기에, 차가 도착할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자가검진 키트로 양성이 나온다면 PCR로는 당연히 양성이 나올 텐데... 한 번 더 양성을 확인해서 어쩌려는 거지? 그럼 그다음에는?

     

그냥 호텔에서 격리를 하면 안 되는 건지, 여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나 잡고 짧은 스페인어로 대뜸 질문을 했다. 하지만 반응은 모두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게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몇 번이고 들어야만 했다. 또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의사는 나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You, Corona positive!’라고 외치고 그냥 가버렸다. 아니 진짜 너무해... 안 그래도 힘들게 온 쿠바에서 코로나에 걸려서 지금 정신없는데!


절대 오지 않는 앰뷸런스


쿠바 병원의 일처리는 상상 이상으로 느리고 답답했다. 불안해서 인터넷을 뒤질수록 휴대폰 배터리는 꾸준히 줄어들고, 주어진 정보는 한정적이고, ‘지금 오고 있다’는 앰뷸런스는 한 시간째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영수증을 청구받았는데, 외국인들의 돈을 빨아먹어 유지한다는 쿠바 병원의 소문대로 잠깐 머문 기간에도 청구된 돈은 두 명에 25만 원이 넘었다. 사실 길거리 암환율이 적용된 쿠바 페소로 따지면 원화로 8만 8천 원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는 얄짤 없이 공식 환율을 적용해 버려 금액이 세 배로 뛰었다. 앰뷸런스 비용과, 병원에서 간호받은 비용도 청구받았는데, 이 금액은 일행의 영수증으로 들어가 실질적으로 나에게 청구된 금액은 8만 원 정도였다.

  

계속된 기다림에 지쳐 목이 말라 물을 요청했더니, 의사가 생수 한 병을 전해주고는 저기 간호사분께서 자기 물을 주셨다고, 12페소를 드리라고 했다. 한국 돈으로는 300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고 잔돈도 없었기에 그냥 50페소를 드리며 감사하다고 했다.

병실과 달리 선선하고 예뻤던 하바나 외곽의 병원


모두가 우리 둘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득한 기피대상으로 볼 때, 누군가가 흔쾌히 건네준 물 한 병은 상상 이상으로 따뜻했다. 답답한 병원실의 작은 창문을 열고 고양이를 만나고, 지는 해와 더위가 조금씩 풀리는 공기를 마시며 두 시간어치의 불안함을 견뎠다.     


올드카 말고 앰뷸런스 타고 쿠바 달려본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본 앰뷸런스. 근데 그게 쿠바일지는 몰랐지!

우리가 처음 병원에 들어온 시간은 약 다섯 시 반. 앰뷸런스는 일곱 시 반이 넘어서야 도착을 했다. 일행이 아파 늦잠을 자기도 했고, 저녁을 밖에서 사 먹을 심산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너무 고팠다. 여행 와서 이런 고생을 하다니. 그냥 약만 받고 가면 끝났을 텐데 병원까지 굳이 오자고 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먼 미래에는 이 순간조차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일행은 계속 열이 났었는데, 두 시간 동안 물만 마시고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일단 이 작은 방을 벗어나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기에, 늦게 온 앰뷸런스조차도 반가웠다. 심지어 앰뷸런스를 타고 달린 10분 남짓한 시간은 상쾌하기까지 했다! 기분이 나아지면서 나름 혼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는, PCR 검사를 하고 자택격리로 풀어주겠지, 검사 비용도 많이 나와봤자 한국이랑 비슷하겠지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처음 보는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을 여유도 있었다.      


병원 앞에서 다시 한 시간



우리가 도착한 병원은 Clinica International Camilo Cienfuegos라는, 아마도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클리닉이었다. 앰뷸런스는 정문 바로 앞에 멈춰 섰고, 앞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녁 공기 속 휴식을 취하며 앉아 있었다. 곧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앰뷸런스 안에서도 기다림은 계속됐다. 이때가 나는 가장 힘들었다. 물은 거의 떨어지고, 에어컨이 있었던 Cira Garcia의 방과 달리 여긴 답답하고 창문도 작은 봉고차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보험사에 전화해 코로나19로 인한 검사와 이송 등의 보장 범위를 물어보는 중이었고, 나도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아끼며 삼성화재에 전화를 걸었지만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라 받지 않았다. 보험금만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한숨 덜 수 있을 텐데. 9시가 되면 영업시간이 시작되니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정말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무지막지하게 돈을 청구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일까? 코로나로 병원 진료를 받아도 청구받을 수 있나? 내가 제대로 보험 신청을 한 건 맞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켜져 갔다.


남은 배터리는 5% 남짓. 그리고 드디어 9시가 되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날은 어린이날이었다. 이렇게 운이 안 좋을 수가! 또 하루 넘게 기다려야 한다니...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불안감은 커지고, 직원들은 오지 않아 답답했다.


네? 격리요? 여기서요?


앰뷸런스에서 한 시간 넘게 지나서야 한 무리의 간호사들이 다가왔다. 처음으로 건넨 말은 여행자 보험이 있냐는 질문. 그리고 이유는, 선결제 금액이 무려 천 달러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USD로는 815불이었고 캐나다 달러로는 1050달러였다. 스페인어로 ‘Mil(천)’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진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간호사한테 'ㅁ.... 밀...?' 하면서 재차 확인을 받았다.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바로 다음에 온 간호사에게서 들어야 했다. 우리가 지금 머무는 숙소에서는 자가격리를 할 수 없고, 무조건 병원 클리닉에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 상상 이상의 답변이라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시설은 어떻고, 밥은 어떻게 먹고, 숙소에 있는 짐은 어떻게 옮기지? 남은 여행 일정은?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쓸 수 있나? 기사로 찾아보았을 때는 쿠바 정부에서 여행객의 호텔 자가격리도 인정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하지 않는 병원 격리라니. 일단 항의하면 호텔 격리라도 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 카드도 주지 않고 반대했지만, 어찌나 단호하고 사납던지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구급차 창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하다가, 처음에는 쿠바 호랑이만큼 단호하던 간호사가 갑자기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저 안에 가면 인터넷도 되고 에어컨도 있고 밥도 준다고. 5일만 딱 치료하고, 집에 가면 된다! 다른 방법은 없고 얼른 들어가서 밥을 먹자는 설득에 일단은 일단은 납득해 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근 1달 동안 여행 준비에 짐 정리, 그리고 쿠바 여행까지 숨 돌릴 틈이 없었는데 오히려 격리하며 보내는 조용한 생활이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조용히 밀린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 5일 정도야 금방 가지 않을까? 운 좋게 보험으로 클리닉 입원 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따로 돈도 들지 않는 셈이니 오히려 좋다. 내 기침과 일행의 열이 나을 때까지 치료도 해줄 테고 말이다.

 



자가키트로 양성이 나온 이후 앰뷸런스를 타고 이송되고, 그 안에서의 결제와 일처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린 시간은 무려 네 시간. 하루아침에 나는 지구 반대편 쿠바에서 코로나에 걸리고, 천 달러를 내고, 알 수 없는 클리닉에 5일 동안 머물게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또 생겨날지 상상도 되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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