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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Feb 19. 2023

세상에서 가장 낯선, 그런데 신기하게 따뜻했던 곳

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3)

쿠바 클리닉 입장!

병원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변조사와 건강검진. 쿠바에 여행자 신분으로 왔는지를 확인하고,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소와 쿠바 전화번호, 여권에 기재된 개인정보 등을 알려주었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아서 정말 다행이었던 게, 병원 직원들은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짧은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신기하고 귀엽다는 듯 순박한 웃음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다시 끝없는 기다림. 병원 입구 바로 오른쪽에 작은 창구가 있었는데, 그 앞에 앉아 나는 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작은 기계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심장 박동수를 재는 검사와 혈압 검사를 했다.


어둑어둑 해가 졌던 저녁


앞에 앉은 간호사에게 줄기찬 질문을 해낸 덕분에, 일행과 같은 방을 쓸 수 있으며 5일 동안의 격리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뭐 이렇게 빡빡하게 격리까지 하나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내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침에 먹은 건 전날 길에서 산 망고 반쪽이었고, 지금은 벌써 저녁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으며 그 한나절동안 바뀐 것들이 너무 많았다.


찐 현지인들과 나누는,
더듬더듬 스페인어 질의응답


저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래도 나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YOU! CORONA POSITIVE!'라고 했던 이전 병원에 비해, 이 병원에는 수수한 호의를 보여 주는 직원들이 있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작은 창구 너머의 간호사들은 내가 묻는 질문들에 귀찮은 내색 없이 대답해 주었고, 나는 빠르고 복잡한 스페인어 속 정보들을 낚시하듯 건져 올렸다.


아까 구급차 안에서는 하도 답답해서 밖으로 몸을 쭉 빼고 공기를 마셨었는데, 이때 앞에 앉아 있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아마도 병원 경비로 보이는 청년이 나를 보며 씩 웃고 말을 걸었다. 뭐야, 싶었는데 정말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De dónde eres? ¿Corea del Sur? ¿Corea del Norte?(어디에서 왔어? 남한? 북한?)"

"Por supuesto... Corea del Sur.(당연히... 남한이지.)"


근데 또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이니 북한 출신도 자연스러우려나. 사람들은 끄덕끄덕 하고 자기들끼리 막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쿠바 병원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쿠바인들에게는 무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긴, 쿠바는 국민소득이 미국의 1/5가 되지 않지만, 미국과 비슷한 영아사망률과 평균수명을 달성했다고 한다. 오히려 굉장히 체계적이고 실력 있는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가격까지 무료일 줄이야. 대신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외국인들에게는 엄청 큰돈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내가 딱 잘못 걸린 셈이다.


또 하나 궁금했던 건, 쿠바인들의 살사 사랑. 사람들에게 혹시 살사 잘 추냐고 물어보니 의사든 간호사든 청년이든 누구나 살사 전문가란다. 몸을 흔들며 살사 동작 시범도 보여준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춤과 음악, 술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문화를 누려왔다고. 나보고 원하면 살사를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어차피 격리 신세니 하하 웃고 넘겼다.


구급차 안에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 나와, 쿠바 안에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 지구 반대편에 살면서도 스페인어 하나로 서로의 삶을 엿보는 짧은 시간은 재밌었다. 통성명도 하고, 나이도 물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던지는 스페인어 단어 하나에도 깔깔 웃는 얼굴들과 구급차 안의 더위, 그리고 그 답답함을 넘기도록 도와줬던 사람들의 농담뿐!

 

예상치 못한 온갖 검사들...


오랜 기다림 끝에 검사가 시작됐다. 한 명씩 불러 검사를 한다길래, 일행을 먼저 보내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두 번째로 검사를 받았다. 함께 간 일행은 마지막 검사 장소에서 바로 방으로 올라가야 하는 듯했다. 다행히 짧게 마주칠 순간이 있어 검사는 어땠냐고 황급히 물어봤는데, 괜찮지만 옷을 벗어야 하는 검사가 있어 여자의사를 부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작은 방에 들어가 폐 엑스레이를 찍고, 침대처럼 보이는 곳에 누워 피부에 전선들을 붙이는 이름 모를 체크를 받았다. 이때 입고 있던 검정 원피스를 가슴 위까지 끌어올려야 했는데, 그전에 일행의 조언대로 'Mujer doctora(여자 의사)'를 애타게 찾았다. 인자한 쿠바노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을 몸에 덮어주시고, 간호사를 불러 선을 몸에 흡착시키는 것을 부탁했다.


그 뒤로는 작은 의자에 앉아 PCR 검사와 피검사를 진행했다. 신속항원검사를 했던 Cira Garcia에서는 양 콧구멍에 채취 면봉을 넣었는데, 여기는 왼쪽만 검사를 했고 마찬가지로 깊숙하게 찔렀다. 또 이때까지는 쿠바의 의료 체계에 대한 반감이 가득해서 뭐든 의심하고 봤는데, 혹시나 피검사하는 주사기가 새것이 아닐까 봐 그것까지 꼼꼼히 물어보았다.


검사를 전부 마치고는 아까 기다렸던 의자에서 잠시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의사와 잠시 스몰톡을 했는데, 무려 24시간 동안이나 근무를 한다고 했다. 24시간 근무하고, 하루 쉬는 느낌. 내가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말했다. 24시간 근무는 좀 너무하지 않나? 검은 피부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의사의 눈 아래, 살짝 비치는 다크서클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방, 샌드위치, 주스...
무언가 하나씩 부족했지만 괜찮아...



배터리가 남아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로 병원을 조금 찍으며 시간을 보내니, 간호사들이 와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내가 머무는 방은 303호였는데, 코로나 환자라서 그런지 건물 복도 끝에 자리를 내주었다. 처음 나를 설득할 때는 방이 호텔이랑 비슷하다고 해서 기대를 했지만, 그럼 그렇지. 건물이 낡은 그대로 엘리베이터와 복도는 거의 병원 공포영화 급이었다.


방은 낡고, 작고, 아늑했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폐쇄병동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것만 해도 심리적 위안이 컸다. 병실에는 싱글 침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급하게 수술용 침대를 가져다 놓은 듯했다.  


냉장고와 에어컨도 잘 작동했다. 쿠바에서 에어컨은 리조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인데, 병원에서는 찬 바람이 너무 세 추울 지경이었다. 창문은 두 팔을 벌린 사이즈 정도로 컸는데, 문은 열 수 없고 물자국이 많아 깨끗하지는 않았다. 이 안에서 바깥공기라도 안에서 실컷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문도 열지 못하다니. 답답한 걸 잘 견디지 못하는 내가 여기서 5일을 버틸 수 있을까?      


다행인 것이라면, 전반적으로 정말 깔끔했다. 바닥은 깨끗이 닦여 있었고 벌레도 없었다. 샤워하는 공간에는 커튼이 있고, 세면대와 변기도 더러운 자국 하나 없고. 쿠바에서 이 정도면 만족이다! 내가 머물렀던 까사는 하루 2만 원으로 저렴하기는 했지만, 바깥으로 트여 있는 창과 에어컨이 없어서 숨 막히는 더위를 매번 그대로 느꼈어야 했는데...



5일 동안 머물 곳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니, 하루치 배고픔이 한 번에 밀려왔다. 분명 밥을 준다고 했으니 나오겠지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밥소식이 없어 전화로 배고프다고 세 번이나 외쳤다. 그렇게 처음 먹게 된 병원표 샌드위치와 주스! 주스는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듯한 수박 주스였는데, 와...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 없었다. 동그란 빵에 햄이 끼워진 샌드위치도 고소하니 맛있었다. 객관적으로도, 바라데로 올인클루시브 호텔에서 먹은 푸석푸석한 빵보다 더 쫄깃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한없이 최악으로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긍정 회로를 돌린다면 나름 괜찮은 저녁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긴 검사도 끝나고, 어느 정도 미래가 예측이 되며, 만족스러운 야식도 먹고, 누워 잘 수 있는 침대도 있다. 에어컨이 있어 시원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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