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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Feb 25. 2023

낯선 공간이 나의 집이 되기까지

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4)

슈퍼맨 까를로스!


잠에 들기 전 해야 했던 일은 바로 까를로스에게 우리 짐을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연락하는 것. 까를로스는 우리가 머물던 까사의 주인이다. 하바나에 5일 넘게 머무를 생각에 짐을 방 여기저기 몽땅 펼쳐 놓았는데, 나이 든 까를로스가 시내에서도 꽤 먼 병원까지 그걸 전부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당장 이를 닦을 칫솔도, 갈아입을 옷 한 벌도 없었다. 내 휴대폰은 이미 방전되었고, 일행의 휴대폰 배터리도 정말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까를로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송신음을 기다리다 드디어 나타난 까를로스 얼굴. 우리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했던 까를로스는 쿠바 병원에 갇혔다고 말하니 'Dios mio!(세상에!)'를 외쳤다. 아픈 아내와 나이 든 카를로스에게, 여행하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씀드리기가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두 손을 모으고 연신 'Gracias(감사해요)'와 'Lo siento(죄송해요)'를 외치는 나에게, 까를로스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까를로스는 우리가 부탁한 짐들을 내일 아침 10시까지 병원 앞으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 몇 가지 물건(충전기와 노트북, 아이패드, 세면도구, 잠옷)의 목록을 적어 메시지로 보내놓았다.


공산품이 턱없이 부족해 샴푸를 사려면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하고, 외화를 얻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환율로 쿠바 페소를 환전해 주는 나라. 우리는 낯선 땅 쿠바에서 의지할 사람이 단 한 명, 까를로스 뿐이었고 그만큼 무방비 상태였다. 사실 까를로스가 마음만 먹으면, 백만 원 넘게 있는 우리의 지갑을 모른 척할 수도 있고 가방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가질 수도 있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짐을 옮겨주는 값으로 당연한 사례금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까를로스가 그 짧은 영상 통화에서 우리에게 한 말은 'Estás bien?(괜찮아?)'과 'Bueono, bueno(좋아, 좋아)'가 전부였다. 


드디어 만난 우리의 짐!


병원에서 청한 첫날밤은 불안감과는 별개로 정말 달콤했다(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준 신경안정제 덕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병원은 아침 8시만 되면 식사를 배달하러 문을 두드렸기에, 그 소리에 맞추어 일찍 기상했다. 전달받은 아침은 간단하지만 맛이 없는 빵과 스크램블이었다. 어제 빵은 분명 엄청 맛있었는데, 별로 배가 심하게 고프지 않은 상황에서 아침을 받으니 전부 그다지 당기지가 않았다. 스크램블은 엄청 싱거웠고, 우유는 지방 함량이 높은 건지 좀 특이한 우유인지 모르겠지만 고소한 맛이 거의 없이 묵직했다.  

   

카를로스 아저씨는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셨다. 9시가 살짝 넘은 시점에 연락이 와서, 지금 택시를 타고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까를로스가 간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영상통화로 화면을 보니, 아내분과 함께 우리의 그 많은 짐들을 바리바리 챙겨 오시고 계셨다. 와, 정말 슈퍼맨 까를로스!


몇십 분 뒤, 까를로스는 병원 1층에 도착하셔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한 청년의 얼굴을 보여주시면서, 이 사람이 짐을 가지고 올라간다고 전했다. 병원 안으로는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하니 직원 한 명을 붙여준 듯했다. 5분 정도 기다리니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고,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은 청년이 우리의 짐을 전부 가지고 왔다.

 

짐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확 놓였다. 우리 짐을 배달해 준 고마운 청년에게는 수고비로 200페소를 쥐어주고, 까를로스 아저씨에게 드릴 봉투에는 160 캐나다 달러와 집 열쇠를 넣었다. 여행자 신분인 나와 일행에게 160달러는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지만(약 15만 원 정도), 우리 마음을 표현할 다른 길이 없었다. 택시값에, 짐 운반 비용에, 코로나 환자가 머물렀던 방을 소독해야 하고 또 우리 때문에 받지 못하는 손님이 있을 수 있으니. 그리고 일단은 그 많은 짐을 전부 싸서 아침에 병원까지 달려왔던 까를로스에게 정말 가슴 찡하게 고마웠다.


격리, 좀 할 만할지도?


낯선 공간을 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건 결국 내 물건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들이 놓이면, 익숙한 공간이 되는 게 아닐까. 세면도구를 풀고 제대로 한 번 샤워를 하니 몸이 아주 상쾌했다. 휴대폰을 충전해 밀린 연락에 답하고 방을 정리하는 여유도 부렸다.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작은 방이 아늑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니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평소 보고 싶던 웹툰을 정주행 했고, 맛이 없는 점심이라도 조금 입에 넣고는 늘어지게 잠을 잤다. 저녁에는 넷플릭스에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봤다. 몬트리올 공항에서 환승하면서 보고 싶은 드라마와 영화를 전부 다운로드해 놓았는데, 정말 최고로 잘한 일이었다. 화면 너머 세상을 보다 보면 답답함도 사라지고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한 가지 후회되는 건 괜히 쿠바 역사 공부한다고 다큐멘터리를 잔뜩 다운받아 놓은 것 정도? 이것만 보면 한낮에도 잠이 솔솔 와서 밤잠 자기가 힘들었다.


나를 지지해 주는 것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후 나에게 찾아온 작은 고민이라면 부모님께 이 상황을 알려야 하는지였다. 사실 안 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훨씬 컸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 동생 시험기간에 가뜩이나 예민해졌을 부모님인 데다가, 내가 쿠바 병원에 갇혔다는 걸 알리고 덜 걱정하기를 바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특히 내가 아는 엄마라면 잠도 못 자고 매일 나를 확인할 거다(음성 지원까지 된다).


그리고 이때 난, 나조차도 나의 불안감을 통제하지 못했다. 한 치 앞도 몰라 가장 초조한 건 나인데, 누군가의 걱정까지 책임질 여유가 없었다. 덧붙여, 솔직히 부모님이 아신다고 해서 해주실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상황이 전부 해결된 이후 말씀드리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 나를 가장 지지해 준 건 어느 누구도 아닌 책과 기록이었다. 시간 지나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 몇 권, 그리고 이 험난한 여정을 꼼꼼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해준 노트북을 잡고 나는 하루종일을 보냈다. 꼼꼼한 기록해 둔 일기를 밑천 삼아, 이렇게 일 년 뒤에도 생생하게 브런치를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렇게 격리하는 며칠 동안 나는 질리도록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이 작은 공간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한정되어 있었고, 그 할 수 있던 몇 가지 일이 나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시간을 가치 있게 쓰고 있다는 성취감은 얼마나 나를 살아있게 하는가!


낯선 이 방에도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다. 여행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면, 이 모든 경험도 쿠바에서의 유일무이한 여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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