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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Jun 27. 2023

의료용 라텍스 장갑으로 닦아 주는 눈물

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5)

새벽에 찾아온 당황스러운 재검사


깊이 잠들었던 금요일 새벽 6시, 갑자기 간호사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원래는 8시나 되어서야 깨우는데, 아직 밖이 깜깜한 새벽이라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당황한 나를 두고 문 앞의 간호사가 빠른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비몽사몽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Perdon?(뭐라고요?)'만 반복했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렸는데, 슬쩍 번역된 한국어를 보니 '정상이 아니다'라는 단어가 보여 심장이 쿵 떨어졌다. 


여행 와서 갑자기 코로나에 걸리고 갑자기 병원에 격리당해 가뜩이나 당황스러운데, 알 수 없는 말로 정상이 아니라는 단어만 반복하니 더욱 겁이 났다. 일단은 구체적으로 뭐가 정상이 아니냐고 물으니,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다'는 답변을 얻었다. 높으면 왜 안 좋고 왜 높은 지를 몽땅 물어보고 싶었는데 스페인어는 안 나오고, 의사와 간호사는 뭘 잔뜩 들고 기다리고 있고. 


어찌할 줄 몰라할 말을 잃었는데, 의사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웃으며 '아프면 조금 높아질 수 있다, 괜찮다'라고 설명해 줬다. 쉬운 스페인어만 골라,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재검사를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고, 의사 선생님은 내 왼쪽 팔에서 피를 뽑고 유유히 사라졌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쿠바 병원은 굉장히 살뜰하게 우리를 보살폈다. 물론 내 관심사는 오로지 퇴원이었지만!


내일 나갈 수 있는 거 맞아?

  

쿠바 병원에서 내 상태는 대체로 굉장히 좋았다. 바라데로의 리조트에 있었을 때는 기침이 심하게 나서 힘들었고, 하바나에서는 너무 더운 열기에 에어컨도 없이 고생을 꽤 했었다. 병원 격리가 시작되고 나서는 심했던 기침이 사그라들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 밀렸던 잠을 오래 잘 수 있었다. 병원이 나한테 처방한 신경안정제는 답답한 공간 안에서도 전혀 우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물론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첫날 간호사가 말해준 5일이라는 시간 덕분이었다. 구급차 안에서 안 나오려고 하는 나에게 간호사는 딱 5일만 안에서 버티면 된다고 했고, 나는 날짜를 하나하나 꼽으며 나가는 날을 기다렸다.


우리가 병원에 처음 입원한 날은 2023년 5월 4일 수요일이었고, 계산대로라면 풀려나는 날은 8일 일요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토요일이 되어서도 퇴원 일정을 말해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일요일에 퇴원과 관련한 병원의 행정 처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와 간호사를 급하게 불러 우리가 정말 내일 퇴원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5일만 버티면 된다면서요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당신들이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일단 음성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만 반복했다. 병원 격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4일을 버티듯 보냈는데,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도 힘든데, 여기서 언제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갑자기 평범했던 작은 방이 죄어오듯 답답하게 느껴졌다. 열리지 않는 창문을 억지로 열고 바깥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캡처해놨던 구글 번역기


그럼 검사는 언제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더니, 화요일이나 되어야 한단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럼 혹시, 화요일에도 양성이 나오면? 검사는 이틀 주기로 하니, 목요일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코로나는 증상이 없어진 후로도 몇 개월동안 양성이 나오기도 한다는 얘기가 머릿속에 번뜩 스쳤다. 목요일에도 양성이 나오면, 주말에는 검사를 하지 않으니 또 그다음 주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럼 바라데로에 예약해 둔 리조트를 취소해야 하고, 쿠바에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하고, 미리 예약해 둔 캘거리의 에어비앤비는 취소가 불가능하고, 그 뒤에 캐나다 동부 여행은 어쩌지? 새로 들려온 당황스러운 소식과 급하게 상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페인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엉엉 울며 약속한 것과 다르다고, 5일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고, 호텔에서 격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간호사는 너무 단호했다. 검사는 화요일이고, 양성이 나와야 집에 갈 수 있다고만 말했다. 처음 병원에 격리당했을 때에도, 1,000달러를 일시불로 지불해야 했을 때에도 울지 않았는데 이 때는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느껴졌다. 병원도, 여행도, 내 몸도.


그때, 그렇게 무뚝뚝하고 단호하던 간호사가 내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닦아주었다. 'No llores, No llores, chika(울지 마, 울지 마)'하고 말하면서. 엄지로 눈 아래 눈물을 쓱 훔치고, 손을 볼에 살짝 얹고, 머리를 톡톡 쓰다듬고. 그리고 방을 나갔다.




쿠바에 온 뒤로 나는 줄곧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하바나의 사기꾼들에게는 걸어 다니는 돈주머니였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는 격리당해야 하는 바이러스로 여겨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오랜만에 보는 동양인이 신기한 것은 당연하고, 여행자를 노리는 사기꾼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또 바이러스를 잔뜩 가지고 있는 건 맞으니 나를 피한다고 해서 억울할 건 없다. 그런데 어쩐지 나의 눈물을 무심하게 닦고 위로해 준 간호사의 손은 잊을 수가 없다. 언제나 단호하고 무뚝뚝할 것 같았던 의료진에게서 얻은 작은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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