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6)
지금 제일 그리운 건
지금 당장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화요일까지 버텨야 한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다운 받아 놓은 영화도 충분하고, 잠도 푹 잘 수 있는 나름 호화스러운 격리 생활. 그러나 그 와중에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것은 음식이었다. 소스를 거의 쓰지 않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수프, 버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퍽퍽한 빵, 찰기가 없어 푸석푸석한 병원 밥은 한 끼만 먹어도 질렸다. 처음에는 몇 숟가락이라도 먹으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음식만 봐도 입맛이 떨어져 과일과 주스로 식사를 대신했다.
'쿠바에서는 쿠바 음식을 먹어야지!' 생각하고 한식을 아예 챙겨 오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그나마 남은 희망이라면, 캐나다 캘거리 공항에 주차를 해 놓고 짐을 옮기기 직전 챙겼던 컵라면 두 개. 하나는 참고 참다가 매운 음식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날 해치워 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격리 생활을 위해 꽁꽁 아껴 두고 있었다.
근데, 쿠바는 배달이 안 되나?
배는 고프고, 한식은 그립고, 마지막 하나 남은 라면은 아껴 둬야 하고. 유튜브에서 먹방 영상을 찾아보면서 군침만 다시던 어느 오후, 번뜩 '쿠바는 배달 음식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만약 가능만 하다면 얼마를 부르든 먹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반신반의하며 구글에 Delivery in Havana를 치니, 신기하게도 'THE 10 BEST Delivery Restaurants in Havana'를 비롯한 게시글이 떴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음식, 중남미 음식은 전부 건너뛰고, 무조건 'Asian food'만을 필터링해 가장 가까운 음식점을 찾았다. 하바나에 있던 유일한 한식집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기에, 한국 음식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제발 중식이나 일식이라도! 그러다, 내가 갇혀 있던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쿠바 레드스시'라는 딜리버리 음식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장 주문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왓츠앱을 켜서, 메뉴를 볼 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제가 스페인어를 잘 못 합니다. 그래도 스시를 먹고 싶어요! 메뉴를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 후, 배달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 주소를 보냈다. 왓츠앱의 자동 응답 기능으로 메뉴는 보내자마자 받아 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롤, 만두, 바비큐 요리... 맛있는 요리들은 끝이 없었다! 한 번에 많이 시키고, 남기면 또 먹지 뭐,라는 마음으로 콜라를 포함해 무려 9개의 메뉴를 골랐다.
그렇게 받아 본 전체 가격은 35000원 정도! 충분히 내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1시간 내로 도착한다는 행복한 답변과 함께, 오랜만에 설렘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음식 반입이 안 된다고?
그런데 우리가 크게 간과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주문만 하면 음식을 바로 받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외부 음식 반입을 쉽게 허용해 줄 리가 없었다. 코로나 환자들인 우리가 1층까지 가서 음식을 받을 수는 없었고, 무조건 간호사 한 분이 내려가 음식을 전달해주셔야 했는데 이 요청은 바로 거절당했다. 배달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간호사 한 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어보고 올게'라고 말한 후 우리 병실을 떠났고, 두 명의 간호사가 더 와서 대화를 하다 한 분이 우리에게 '반입은 절대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주문까지 했는데! 어제도 격리 연장 소식에 펑펑 우느라 힘을 다 썼던 나는 완전히 낙담해 버렸다. 소리 내서 울 힘도 없어 간호사 앞에서 눈물을 주룩 흘리며 'Pero tengo hambre.... quiero comida Coreana....(하지만 배고파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제일 대장으로 보이는 간호사는 고개를 양 옆으로 저으며 'No, no...' 하며 떠나버렸다.
결국 나는 주문한 지 17분 만에 레드 스시에 다시 연락을 보내서, '진짜 미안하지만 내 의사가 다른 음식을 여기로 들여올 수 없다고 하네요... 주문을 취소해도 될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에 온 후 가장 우울했던 순간이었다.
간호사 유데이시의 스시 밀반입 작전
그런데 10분 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초록색 머릿수건을 두르고 하늘색 옷을 입은 간호사 한 분이 문 앞에서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너희 며칠 동안 제대로 못 먹은 거 알고 있어, 나한테 가방을 주면 음식 몰래 올려다 줄게. 배달원에게 '유데이시가 간다'라고 전해. 대신 먹은 후 쓰레기는 전부 가져가야 해.'라는!
나는 당장 레드스시에 연락을 해서, '다시 주문해도 될까요? 아래 도착하면 전화 주세요. 유데이시라는 간호사가 내려가서 돈을 낼 거예요. 너무 감사해요! 저 스시가 너무너무 먹고 싶거든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답변은 'Ok Perfect!'
스시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37분. 나는 창 밖으로 계속해서 오토바이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었고, 배달원이 도착하자 유데이시는 우리의 가방 하나를 가져가 스시를 담아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데이시 뿐만 아니라 다른 간호사들이 배달원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 우리의 밀반입 작전이 들킨 걸까? 스시를 못 먹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보다도, 유데이시가 혹시 우리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대화는 10분이 넘게 계속됐다. 도대체 배달원과 네 명의 간호사가 무엇에 대해서 얘기를 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유데이시는 쓱 자리를 떠서, 우리 방에 스시를 가져다주고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한 끼! 원래는 뭘 먹기 전에 항상 사진부터 남기지만, 이 때는 사진 찍는 것도 잊을 만큼 음식밖에 보이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롤은 사실 야채와 연어보다 밥 양이 더 많았고, 만두에서는 연한 잡내가 났고, 콜라는 미지근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동적인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