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쿠바 병원에 감금당해 봤거든요...! (Fin)
기다리고 기다리던 약속의 날
온도 조절이 안 되는 냉장고에서 꽁꽁 얼었던 수박을 먹으며 버텼던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PCR 검사를 하는 화요일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온갖 해외 PCR 검사 후기를 찾아보며 '음성 잘 나오는 법'을 연구했었다.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해서 잠만 주야장천 잤고, 비타민을 충분하게 섭취해야 한다고 해서 이미 질려 버렸던 수박과 파인애플을 꼭꼭 씹어 삼켰다. 물도 많이 마시고, 아침이 저녁보다 양성이 나올 확률이 적다는 말에 꼭 아침에 검사를 해달라고 간호사를 조르기도 했다.
내 바람대로 PCR 검사는 이른 아침에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아침을 먹고 조금 졸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호복을 입은 여자 간호사가 한 명 들어왔다. 나는 어디선가 읽은 야매 민간요법에 따라 후다닥 화장실에 가서 코를 세게 풀고, 알콜솜으로 코 안을 빠르게 스윽 닦았다. 어찌나 간절히 음성을 바랐던지 코 안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는 내가 나오자마자 나를 잡고 검사용 면봉을 코 안으로 넣었다. 입원 직전 했던 검사에서는 엄청나게 긴 면봉을 깊이 넣어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에는 코 안쪽만 슬쩍 훑는 정도에 그쳤다. 물론 조금만 넣어도 엄살 부렸던 내 탓도 있겠지만.
어마어마한 기다림의 시간
검사를 한 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또 어찌나 긴장이 됐는지, 정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이때의 일기를 보면 '고등학교 때 수능 성적표를 받으러 계단을 올라가는 마음이랑 비슷하다'라고 적어 놓았었다. 양성이 나온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또 지금의 병원 생활이 아주 힘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간절해질 줄이야.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사실 아주 악조건도 아니었다. PCR 검사에서는 CT 수치가 중요한데, CT값이 낮을수록 적은 사이클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됐다는 뜻이라고 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몸속에 바이러스가 많다는 것. 병원이 알려준 처음 CT 값은 내가 14, 일행이 16이었다. 쿠바에서는 30이 음성과 양성을 가르는 기준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음성이 되려면 40에서 45 이상의 CT 값을 요구한다. 쿠바에서 음성을 받는 것이, 한국에서 음성을 받는 것보다 훨씬 쉬운 셈이다. 또 기침이나 열과 같은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일행과 나 모두 완전히 없어졌고, 컨디션도 적당히 회복된 듯했다. 검사도 빡세게 하지 않았으니, 사실 음성이 안 나오면 이상한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쓱 얼굴을 내미는 불안감은 너무나도 컸다.
YES, Negativo!
기다림의 시간은 또 엄청 길었다. 샘플을 연구실로 보내서 검사를 진행하는 데에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모든 것을 천천히 하는 중남미답게 4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더 이상의 불안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나는 129번을 꾹 눌러 도대체 언제 결과가 나오냐고 물어봤고, 나의 간절한 'Rapido(빨리)!'를 들은 담당자는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내용을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다림. 결국 30분 뒤 다는 다시 전화를 걸어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재차 물어봤고, 그때 들린 힘찬 'Negativo!'
나는 믿기지 않아 'Los dos(우리 둘 다)? Negativo(음성)?'라며 소리를 질렀고, 직원은 'YES, los dos, Negativo!'라며 나의 환호를 확인해 주었다.
드디어 이 병원에서 풀려나는구나!
그래도 즐거운 퇴원길
음성 소식을 듣자마자 완전히 들뜬 나는 정말 오랜만에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샴푸를 아끼느라 며칠 만에 하는 샤워는 덤. 너무나도 느린 행정 처리 때문에 음성 결과를 듣고 퇴원을 하기까지는 또 3시간이 걸렸고, 주말이라고 PCR 검사를 미뤘던 병원 때문에 입원일이 이틀 더 늘어나 2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가는 길에는 우리를 친절하게 보살펴주었던 따뜻한 간호사들과 사진도 찍고, 병실의 마지막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이 병실에서 울고 웃었던 걸 전부 알고 있던 간호사들은 진심으로 우리의 퇴원을 반겨주었다.
입원과 퇴원 사이 일주일 동안, 나는 살이 3kg가 빠졌고 일행은 거의 4-5kg가 빠졌다. 작은 방에만 갇혀 움직이지 않다 보니 근육이 없어진 탓일까? 원래는 번쩍번쩍 들던 캐리어도 괜히 무겁게 느껴지고, 조금만 걸어도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이 답답한 병실을 나왔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이 들었다. 자유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밥도 주고 에어컨도 빵빵하고, 해야 할 일도 없이 쉴 수 있는 깨끗한 방이었지만 이보다 먼지 가득한 하바나의 뜨거운 거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니.
나는 오랜만에 맡는 바깥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피부에 바로 닿는 뜨거운 햇빛을 마음껏 즐겼다. 자유롭기에 내가 느꼈던 모든 불편함들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