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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라군과 핫도그, 마지막 저녁

아이슬란드 2주살이 : 떠날 준비

by 김다영
익숙해질 즈음, 마지막 일정들이 다가왔다

꿈같은 여행 속 여행이 끝나고 자잘한 일상들에 익숙해질 즈음 한국행 비행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가득 담았던 식료품 쇼핑의 양이 반으로 줄었고, 가지고 왔던 음식들을 어떻게 다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를 짰다. 남은 날들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 일정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기대했던 것은 블루라군! 지열로 데워져 미네랄이 가득한 푸른 온천수로 유명하다. 따뜻한 날씨 가운데에도 마침 며칠 전 눈이 와 약간의 희끗한 풍경이 남아 있는 것도 운이 좋았다. 아침에는 흐리다가도 오후엔 맑게 개어서 푸른 하늘과 하늘색 물의 조화가 아주 아름다웠다.


블루라군은 1인 13만 원대로 비싼 만큼 고급스럽다. 내부 락커도 샤워실도 깔끔하다. 크기도 크고 오전 시간대라 사람이 많지도 않아 여유롭게 풍경을 즐겼다. 인기 관광지니만큼 예약은 빠르게 마감되기에, 아이슬란드 여행 일정이 정해졌다면 최대한 빠르게 예약해 두는 것이 좋다. 우리 가족도 막판에 일정을 바꾸고자 기존 예약을 취소했는데, 그 자리가 금방 차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온천 중간에 있는 작은 부스에서는 흰색 머드팩을 나눠준다. 천연 재료라 무해하고, 얼굴에 바른 후 조금 있다가 그대로 물 안에 씻어내면 된다. 또 음료 한 잔도 무료라, 나는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건강한 과일과 채소를 그대로 갈아 만든 주스도 있었는데 맛있었다. 작은 액티비티들이 안에 있어 시간이 금방금방 흘렀다.



출출한 배는 핫도그로 충전하기

물놀이 후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는 건 어느 나라에 있든 똑같나 보다. 우리 가족도 집에 가서 밥을 먹을까 하다가, 이미 한 번 다녀온 작은 핫도그 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슬란드 핫도그는 특히 맛있다. 양고기가 많은 나라라 그런지 소시지의 향이 독특한 것도 있지만, 핫도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음식이 한국의 두 배 정도 되는 가격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7,000원이면 보들보들하고 쫀쫀한 빵과 톡 터지는 소시지, 바삭한 마늘 후레이크와 진한 소스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배고플 땐 네 입이면 끝나는 이 조화로운 맛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호화로운 마지막 외식

아이슬란드에서의 외식은 난이도가 높다.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간단히 먹어도 넷이면 16만 원이 넘는다! 그래도 지구 반대편 낯선 곳에 왔으니 적당한 플렉스는 필요하겠지. 우리 가족은 심사숙고한 끝에,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올드 아이슬란드’라는 곳에 왔다. 이름부터 아이슬란드 향을 잔뜩 담은 작은 식당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가족과 나는 따로 떨어져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마을 위쪽의 작은 카페를 갔다가 도서관에 들러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요리책을 보다 왔고, 가족들은 따뜻한 시나몬번을 먹었다. 각자 시간을 보내다 일곱 시 즈음에 식당으로 향했는데, 오는 길에 눈발이 아주 거세져 거대한 스노우볼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축축한 옷을 입고 식당 안에 들어서자 친절한 웨이터가 자리로 안내했다. 밖과 다르게 안은 포근했다. 곧 나온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여러 소스를 다채롭게 써서 각 음식의 맛이 예측을 벗어났고, 처음 먹어보는 보드라운 북극 곤들메기는 살결이 부드러우면서도 껍질이 바삭했다. 적당히 노릿한 양고기와 접시를 가득 채운 구운 채소가 감탄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한 명씩 돌아가며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았다. 엄마와 동생은 예상헀던 것처럼 넘실거리는 초록 오로라를 말했다. 아빠는 차를 렌트해 로드트립처럼 아이슬란드 곳곳을 누빈 것이 행복했다고 한다.


나는 동네 수영장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날 죄였던 갖은 업무와 걱정을 내려놓고, 추운 날씨에 굳었던 근육들을 따뜻한 물에 풀며 깊은 날숨을 내뱉었던 순간을. 이 작은 마을에는 조급함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았다. 너도나도 익숙한 듯 퇴근하고, 하교하고 온천에 들어와 노곤함을 푼다. 그래서 나도 마치 이 일상의 일부인 것처럼 나를 내려놓고 하늘을 봤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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