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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일 프로젝트 Sep 08. 2015

제주에서 두달 #3

때론 길을 잃어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어제는 자전거 타고 무적정 달리다가 옆 동네에서 길을 잃었다. 때론 길을 잃어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그렇게 만나는 우연한 행복을 난 좋아한다.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여행자의 시선. 여행자의 입장일 땐 그 곳에 사는 사람이고 싶었으나, 막상 한동안 지내다 보니 여행자의 느낌이 고팠다. 낯선 풍경에 고립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왔지만 당연하게 어떠한 낯섦도 언젠가는 낯익은 풍경이 되어 버린다. 이따금씩 낯익은 풍경을 낯설게 해야겠다.





근래 파스타가 너무 먹고 싶었다. 원래도 좋아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제주도에 와서 파스타를 먹은 적이 없었다. 파스타 면이 내 몸을 휘감는다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이랑 가까운 곳에 갔는데 안타깝게도 그 맛은 내 맛이 아니었다. 집에 가려다가 배도 부르고 산책이나 할 겸 바다에 들어갔다. 이토록 부드러운 모래라니! 모래도 좋고 투명한 물이 좋아서 바다를 따라서 집에 갔다. 물에서 나오니까 이젠 내가 물에 너울대는 미역 같았다.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오는 길에 멀뚱히 앉아서 바다만 보고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금방 갔다. 제주도에서의 시간도 금방 금방 간다. 뭐 이렇게 시간이 빠른지 싶을 정도로- 하루도 금방 지나가는 것 같고. 오늘은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가 아니고, 하루에 한 가지를 하든  아무것도 안 하든 마음이 급하지가 않아서 좋다. 다시 육지에 돌아가면 나는 뒤쳐진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얼마나 뒤쳐지든 상관없다. 내가 기준인데 뒤쳐질 게 뭐 있어. 어찌 됐든 급하지 않고, 고통 없는 시간들이라 다행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마저 뜨거워서 책을 들고 문 앞에 나와 앉았다. 방충망만 닫아놓고 자연스러운 바람의 흐름을 몸으로 막고 있다. 방 안에서의 적막함보다 문 앞에서의 적절한 소음이 더 좋은, 시원한 오전이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에 갔다. 그 카페는 예술가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아기가 태어나서 아직 오픈하지 못한 곳이었다. 오픈한 줄 알고 간 거였는데 오셨으니 커피를 대접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집에 오면서 가길 다행이었다고 말하면서 올 만큼 예술가 부부의 집은, 잠자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퍼지던 그 집은, 불을 켜지 않아도 자연스레 햇빛이 등이 되던 그 집은 다행이었고, 대접해주신 커피도 예술이었다. 우연한 행복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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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손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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