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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일 프로젝트 Aug 26. 2015

제주에서 두달 #2.

바람에 날리는 빨래에서 포근한 향이 날 것 같은 풍경들이다.

쏟아지는 햇빛이 알람이었던 아침이다. 의외로 맑은 날씨를 만나기가 힘든 제주여서 날씨를  확인하자마자 빨래를 돌렸다. 빨래를 널고 경사 진 지붕 위로 올라갔다. 높은 지붕 덕분에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지붕 위 시선으로 바다를 보니 마음도 덩달아 높아지더라.  





너구리가 가까워지니 나무들이 뽑히고 바람이 울었다. 바람소리에 깨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듣고, 춤추며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다 보니 해가 가고 달이 간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은 쾌청했다. 지인의 부탁으로 함께 관광지에 갔다. 가서 사진 찍기는커녕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보다 길가에 널린 빨래가 좋다. 빨래가 널린 풍경이 다 다르게 그 집이랑 어울린다는 게 좋다.

바람에 날리는 빨래에서 포근한 향이 날 것 같은 풍경들이다.





벌써 제주에서 이 주를 지냈다. 하루하루 숫자가 커지는 게 싫다. 그게 싫다면 D-day로 세야 하는데 그러면 육지 갈 날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싫고- 어떤 하루를 보내든지 떠나는 날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은 시한부 제주인의 날들이다.





가끔은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싶다. 조용하려고 책을 들고 마당에 나갔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가 제주도에서 무슨 책만 읽냐고 책 많이 읽는 것도 안 좋아라면서 뒷말을 흐렸다. 엄마는 딸이 혼자 생각하다가 그 안에 갇힐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책이 안 좋다고 말하다니 귀여운 우리 엄마- 엄마 말대로 안 좋은(?) 책 읽기를 관두고 자전거를 탔다. 잡내를 없애려고 생강, 레몬을 쓰듯이 잡념을 없애는 뭔가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게 나한테는 바다인 것 같다.





글/사진, 손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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