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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일 프로젝트 Aug 26. 2015

제주에서 두달 #1.

아빠가 챙겨 준 젤리를 가방에 넣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제주도에서 두 달 동안 살기로 결심하고, 아빠가 챙겨 준 젤리를 가방에 넣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혼자여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차분해졌다. 나는 차분해진 내가 낯설었지만-


그래서 친구가 비행기 안에서 읽었으면 좋겠다면서 준 손편지를 꺼냈다. 친구의 당부대로 구름 위에 올라간 후에야 편지를 열어봤다. 미리 안 열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편지 덕분에 차분해진 마음이 풀어졌고, 그 후에 앞에 앉은 아저씨의 흰머리도 보고, 옆 창문으로 구름바다도 구경했다. 


내가 제주도에서 두 달을 산다니! 아직은 꿈만 같다. 나는 아마도, 제주에 있다.  




제주에서 맞는 첫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왜 잠이 안 올까 생각해보는 중에 낯선 샴푸 향이 느껴졌다. 피곤함을 씻겠다고 샤워하면서 머리도 감았더니 그 바뀐 샴푸 향이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것을 계속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바뀐 잠자리 탓도, 내가 서울에서 3-4시쯤 잔 버릇 탓도 아닌-
낯선 샴푸 향기가 간지러웠다.





오늘은 10시까지 늦잠을 잤다. 늦잠을 자도 10시라니. 제주는 공기에 뭘 탔나? 일어나서 씻고 청소기도 돌리고 내 이불도 세탁기에 넣고 나서 오늘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우리의 약속에 시간은 없었다. 그냥 준비가 되면 되는대로 연락을 하고 만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약속 시간에 쫓기는 촉박함도, 약속에 늦어서 느끼는 미안함도 없는 관대한 약속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니! 
제주도에 있다 보니 주말의 의미를 잊게 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날짜를 인지하지 않아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간다. 텔레비전을 안 보니까 주말에 더 무딘 것 같다. 매일이 평화로운 평일 같은 날들이다. 이곳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책을 보고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본다. 그러고 보니 바다랑 맞닿은 하늘이 오늘따라 낮아 보이네.




글/사진, 손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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