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삼일 프로젝트 Jul 03. 2015

섬 막걸리

신안 섬에서 만난 막걸리 주조장 이야기

사진, 조혜원 / 글, 김홍주

 방학에 놀러 가던 큰 집 시골 마을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마을 맨 윗단에 위치해 있던 할아버지는 동전 몇 푼과 작은 주전자를 쥐어주며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막걸리 값 보다 조금은 넉넉히 동전을 쥐어주셔서 과자 한 봉지 정도는 덤으로 챙길 수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 아주머님이 머리 한번 쓰다듬으시고는 큰 다라이에 있던 뽀얀 막걸리를 주전자에 옮겨 담으시는 동안 난 어떤 과자를 골라야 할지 쭈뼛거렸다. 빨리 할아버지에게 막걸리를 건네고 과자를 먹을 심산에 걸음은 빨라지고, 돌멩이가 울퉁불퉁했던 시골길에 곧잘 차이며 주전자 주둥이로 하얀 막걸리를 흘리곤 했다. 그 시큼하고, 약간은 얼얼했던 막걸리의 향기는 그렇게 방학 내내 녀석의 옷자락 어딘가에 함께 했다.


주조장에서 만난 막거리는 쌀뜬물 같았다.  ⓒ 조혜원


섬 안에 주조장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왜 미쳐 생각하지 못했을까. 유통기간이 짧고, 보관 방식이  현대화되지 않았던 옛날, 막걸리는 그렇게 동네에서 만들어 주민들에게 소화되던 술이었다. 섬 주조장 안에 들어서자 마당에서부터 그 향기가 났다. 금방 딴 신선한 막걸리의 냄새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막걸리를 여기저기 흘려 적당한 시간과 바람에 삭히고, 사람들의 체취가 적당히 더해져서 만들어진 냄새. 익숙했다. 정겨웠다. 아마도 이 섬에서 그 옛날 어떤 녀석은 주조장에 달려와 막걸리 심부름을 하곤 했을 거다. 동네방네 주전자 코로 막걸리를 쏟으며 냄새를 뿌리고 다녔겠지. 하루의 고된 농사일을 마감하는 어스름한 저녁, 평생 섬에서 살다 가신 할아버지의 반주는 그렇게 채워졌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서울에서는 멀고 먼 신안군, 목포 옆에 위치한 작고도 큰 지역이다. 무려 1004개의 섬들이 모여 있는 지역, 유명한 흑산도와 홍도에서 국토 끝섬 가거도까지, 우리나라 섬들의 1/3이 이곳에 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이 섬들의 왕국은 여행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을 낸다. 섬의 아름다운 풍광도 좋지만, 이왕 섬에 들어갔으면 섬에서 유통되는 막걸리에 현지 반찬 몇 개 함께 해 보자. 쌀로 만들어져 유난히 밥 반찬과 잘 어울리는 이 술은 술상 보다는 어쩌면 밥상과 함께 해야 제격이니까.




막걸리 한잔 맛보려하자 기다리라며 냉장고에서 꼬막 반찬을 꺼내주셨다. ⓒ 조혜원
암태주조장 입구 ⓒ 조혜원

                                                                                                

섬 쌀로 만들어진 담백한 맛, 암태도 막걸리

암태도, 목포에서 한 시간 삼십 분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신안군의 제법 큰 섬이다. 지금은 인근에 있는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일단 배를 타고 들어가면 다른 섬들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매력도 있다. 하지만 그리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이라 여름 성수기에도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섬이지만 평지가 많고, 땅이 비옥해 어업보다는 농업을 많이 하는 이 섬이라서 쌀도 제법 풍족하다. 그래서 이곳 암태도 주조장에서는 모두 섬에서 길러진 ‘섬 쌀’로만 막걸리를 만든다. 그 흔한 밀가루도 전혀 넣지 않고, 감미료인 ‘아스파탐’도 최소량만 넣는다. 덕분에 맛이 아주 담백하다. 섬에서 주민들에게 주로 소비되는 막걸리가 서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막걸리들에 비해 화려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톡 쏘는 맛도, 단맛도 적은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 과연 알콜도수가 있긴 한건지 몇 번이고 술병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알콜도수 6도. 일반 막걸리와 다를 바 없는데 계속 마시기에 참 부담이 없다. 첫잔은 달고 맛있지만 계속 먹으면 뭔가 개운치 않았던 화려한 막걸리들과 확연히 다르다.

50여년이 되었다는 이곳 주조장은 명명을  유지하다가 최근 막걸리 열풍으로 주문이 늘자 최근 현대식으로 기계화를 했다. 살균하지 않은 생막걸리라서 유통기한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목포 인근 까지 유통되고, 더러는 놀러 왔다가 이 맛이 좋아 전화로 택배를 시켜 드시기도 한단다. 제조한 후 2~3일쯤 숙성시켜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주인 아주머님의 귀뜸. 막걸리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바로 만든 것 보다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암태도 주조장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기동리 (암태파출소 골목)
연락처 061-271-1507
가격 한병 1,200원 (택배는 기본 20병, 택배비 5,000원)                           




막걸리는 밥 반찬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 ⓒ 조혜원
겨울철, 한산한 주조장에 찾아온 손님에 할머니는 반가워 하셨다. ⓒ 조혜원



곱게 늙으신 할머니 주름만큼이나 정겨운, 안좌도 막걸리 


막걸리는 농사일도 관련이 깊다. 농사가 한창인 계절에는 논에서, 밭에서 새참과 함께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덕분에 시골 주조장 역시 농번기에는 바쁘고, 농한기에는 비교적 한가해진다. 안좌도 할머님을 만난 때가 초 겨울인지라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막걸리를 며칠에 한번씩 내린다고 하셨다. 이곳 역시 섬에서 생산된 쌀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막걸리를 마시며 일하고 지은 쌀이 막걸리로 재탄생해서 다시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요즘 떠오르는 ‘푸드 마일리지’를 생각해보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안좌도의 막걸리는 안좌도에서만 대부분 소비된다. 그래서인지 이곳 역시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운영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적당한 터울로 막걸리를 내려 그때 그때 생산되는 대로 유통하기 때문에 방부제를 넣을 필요도 없다. 섬에 함께 사는 주민들과 나눠 먹을 음식이다. 대단한 정성을 얘기하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아무거나 넣어서 만들 수도 없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반가우셨는지 할머님은 내내 좋은 인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마루에 새초롬하게 줄지어 앉아있는 메주가 정겨웠던 마루에는 막걸리와 메주 향이 은은했다.

안좌도 주조장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안좌면사무소 뒷편)
연락처 061-262-9828
가격 한병 1,100원 (택배는 기본 20병, 택배비 5,000원)         



주조장이라기 보다는 할머니가 집에서 담그신 술을 파는 곳이다. ⓒ 조혜원
마을이 그리 크지 않아 가거도에 가면 쉽게 눈에 띈다. ⓒ 조혜원



우리 국토 끝섬 할머니의 손맛, 가거도 막걸리 

국토 끝섬, 가거도. 이곳에서 막걸리를 만난다는건 설레는 일이다. 섬들마다 차이가 있어 더러는 농사를 많이 짓는 섬도 있지만 가거도는 거친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신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가까운 섬에 가서 곡식이나 채소등과 교환해서 생활하셨단다. 쌀이 귀하던 시기인지라 그래서 막걸리의 주 재료는 보리였다.


‘옛날에 쌀이 어딨간디, 보리에다가 쌀을 쬐끔 섞어서 만드는 거시제’


할머니에게 막걸리는 쌀로 만드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자 그렇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쌀이 흔해졌지만, 아직도 할머니는 예전 가거도에서 어른들이 담그던 방식대로 쌀을 귀하게 여기며 보리 막걸리를 담그고 계셨다. 보리와 쌀, 그리고 가거도의 울창한 독실산에서 할아버지가 구해온 다양한 약초를 함께 넣어 만든 막걸리는 짙은 갈색빛을 띄고 있었다. 익숙하게 보기 힘든 이 갈색 막걸리는 맛 또한 전혀 달라서 약술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가거도 할머니 토속주
주소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 대리마을 26-4
연락처 010-5797-1456


본 글은 rove 매거진 창간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페이스북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 231프로젝트 페이스북


글이나 사진은 메일로 보내 주세요.
> 이메일 : 231@231.co.k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