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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Apr 25. 2023

무릎을 내어주고 글로리를 얻다

1등 못하면 망해부러

제가 살고 있는 구례군에서 3년 만에 군민의 날 행사가 크게 열렸어요. 3일 동안의 행사 기간 중, 마지막 날 열리는 군민체육대회를 위해 종목별로 면 대표 선수들을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언제 또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뭐 고민할 필요도 없었.


"저요! 지원할게요."


남은 종목 중 단체 줄넘기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뭔가 흥겨운 동네 행사 정도로 생각하였지만, 군 단위의 행사는 제가 생각한 규모와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체육대회 관계자, 참여자들의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행사가 있기 2주 전부터  5회의 훈련 날짜를 통보받았어요.


막상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해야겠죠?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연습을 나갔습니다.


"70개는 넘어야제."

"적어도 50개는 넘어야 순위에 들지, 안 그럼 망해부러."


스파르타에 왔는 줄 알았습니다. 강도 높은 정신력 훈련에 30개를 넘고 40개를 넘습니다.


"이그슨 진짜로 해야 하는 거여. 설렁설렁할라믄 아예 하지 말아부러야제."

"연습 안 했는가 보네. 60개 못 넘으면 집에 못가제. 문 잠가부러."


줄넘기 선수로 나선 분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엄마들이었습니다. 같이 깔깔거리며 연습하니 오랜만에 학창 시절 느낌마저 들더군요.




드디어 대회 당일.


시가행진을 해야 한다며 아침 일찍부터 모였습니다. 정말로 '행진'을 하더라고요. 단체로 맞춘 옷과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한 시간 정도 읍내를 돌았습니다. 나와서 구경해 주시는 분들께 손도 흔들며 봄날치고는 여름같이 더운 날, 신나게 에너지를 소모했더랬죠.


아름다운 지리산 자락이 보이는 운동장에서 수육을 먹어 보니... 정말 순식간에 소진되었던 에너지 풀충전. 이제 줄넘기 100개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줄넘기 경기 전에 씨름 경기를 구경했어요. 씨름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제법 큰 상금이 걸린 개인전 신청도 받던데 출전했다가는 모래판에 거꾸로 박힐 것 같아 참았습니다.


드디어 단체 줄넘기의 시간이 왔어요.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첫 번째 시도에서 가장 적게 뛴 면이 두 번째의 가장 처음으로 뛰는 룰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 너무 긴장했을까요? 12개를 뛰고 8개의 면 중에 끝에서 3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면이 1차에 48개로 최고 기록을 세웠더랬죠.


아쉬워하는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어요. 2차에 에는 무조건 48개를 넘어야 했고, 그러고 나서도 5개의 다른 면이 우리가 뛴 개수를 넘지 않게 기도하고 있어야 했죠.


드디어 저희 차례.


'두근두근'


이렇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걸 느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줄넘기 줄이 돌아갑니다.


"하나, 둘, 셋..."

......

"마흔여섯, 마흔일곱, 마흔여더얼!!"


48개를 넘기고 49개, 50개를 넘겼습니다. 주변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환호성이 들렸어요.


최종 51개의 기록으로 2차를 마쳤고, 그 뒤에는 뛰는 것보다 더 힘든 기다림의 시간이 남았더랬요. 


결국 차례로 4개의 팀이 전부 40개를 넘기지 못했을 때, 함께 뛰었던 엄마들과 주변에서 응원해 주던 면민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펄쩍펄쩍 뛰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누가 보면 로또 1등에 당첨되었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 만치 기뻐했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뒤에 함께 기쁨을 느끼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 것 같아요.


시골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제가 언제 해볼 수 있었을까요? 구례가 고향은 아니지만 잠시 머물다 갈 사람처럼 지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참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제2의 고향이 생긴 것 마냥 애향심이 가득한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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