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형과의 대화
4월 11일이면 김상진열사 할복의거 48주기.
능수버들 아래서 김상진형을 만났다.
<1975.김상진>다큐영화 만들면서 누리는 특권중의 하나다. 해마다 요맘때 옛 서울농대(수원상상캠퍼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보기도 하고 이 버드나무 아래서 보기도 했다.
경이로운 능수버들의 낭창거림. 나는 79학번이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교양과정을 마치고 전공학부는 1980년부터 수원캠퍼스에서 지냈다. 그 당시에도 큰 거목이었는데 43년이 지난 지금 보니 이젠 ‘신령스러움’까지 더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나무에는 ‘두 눈으로 목격했을 민주주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올 봄에는 영화도 제작완료 했고, 시절도 하수상해서 형님을 2023년으로 오시라고 했다.
자리를 옮겨 목련꽃 그늘아래 벤치에 앉았다.
“어떤가? 요즘도 살만한가? 몇 년 전엔 촛불 시민들로 살맛난다 했는데....”
“어휴, 말씀 마세요,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습니다”
무능무기력, 손에 권력을 쥐어줘도 할 일 못한 민주당패거리, 진보연하는 입진보들...
그러다가 쓰레기언론, 검사판사, 친일세력들의 야합에 권력을 빼앗긴지 1년...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냥 이대로 놔두면 우리의 민주주의 아니... 나라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리란 것을 조곤조곤 상진형에게 말씀드렸다. 중간중간 유튜브를 보여드렸다.
형님은 무슨말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형님! 이 난국을 타개할 시국선언문 하나 써주세요”
“알겠네, 쓰고 말고 할 것도 없네. 돌아가는 꼴을 보니 1975년도에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쓴 ‘양심선언문’에서 글자 몇 개만 바꾸면 될듯하네”
“허 참~ 공교롭네”
“그렇게라도 하는게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생각 정리해서 보내주겠네”
휘리릭!
능수버들 낭창거림속으로 형님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아침...
상진형님은 내 마음속에 ‘신양심선언문’을 보내주셨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번 자네 시대의 싸움은 조국 민주주의 여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듯하네.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멈추지 말게. 이 ‘위태로움’은 온갖 불합리와 패악질의 근원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 맞닿아 있네.... 하늘에서 보니 그렇다네^^ 건투를 비네”
[김상진의 신양심선언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출세를 위한 줄서기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청소년들은 미래의 꿈을 저당 잡힌 채 자기 분열적 학폭에 시달리며,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반응 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없는 죄를 만들어 압수수색 남발하는 법비(法匪)들에 의해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억울함에 몸부림치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검찰독재의 잔인한 폭력성을, 공정과 상식을 가장한 검사와 판사들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윤석열정권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후안무치, 무능력, 굴종외교의 복합체, ‘국민의 힘’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검찰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 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검판(劍判) 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2023. 봄
과거에서 서울농대 축산과 4학년
68학번 김상진이 쓰다.
학생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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