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리랑
그 숫자 1, 2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 높지 않은 마을 뒷산을 올랐다. 중턱쯤 올라섰을까? 유갈색이 섞인 풀 섶에 팻말 하나가 눈에 들었다. ‘원평 구미란전투 동학농민무덤군’
주변에는 1, 2, 3,.... 나무 토막에 씌여진 숫자들. 단박에 알아차렸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마지막 구미란 전투에서 일본군 기관총 세례에 속절없이 쓰러져간 무명 농민혁명군들의 무덤이었다. 무더기로 방치된 시신들을 한참 후에 주민들이 이곳저곳에 임시 매장했던 역사다.
이야기농업연구소장으로 김제농업기술센터 1박 2일 특강을 진행했다. 김제정보화농업연구회원들 대상 ‘김제를 보고(See), 김제를 쓰다(Write)’였다. 강의 다음 날, 회원들과 함께 카메라 들고 ‘김제 자연문화유산 투어’를 진행했다. 전문가의 안내를 따라가는 그 여정은 이야기농업의 필수프로그램이었다. 농업은 지역의 스토리와 꿰매질 때 완성되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19일, 원평에 들러 원평집강소(복원 이전 방치된)를 돌아보고, 구미란 뒷산에 올라 동학의 혼령들을 만난 것이다. 혼령들께 예를 갖추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엎드려 1번, 2번 혼령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날 이후 종종 구미란을 찾는다. 그다음 해 2015년 12월에 원평집강소가 복원되었고 그 몇 년 후에 기념관도 건축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던중 내 생의 분기점이 도래한다. 대전 출신으로 수도권 30년을 지내고 2017년, 내 나이 57살, 김제원평으로 귀촌했다. 구미란 혼령들과 동록개의 서사가 주는 울림에 망설임 없이 화답한 것이다. 동학군의 혼령들과 원평 백정 동록개의 삶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9년도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 공모전에 참가하여 장편다큐멘터리 시나리오 ‘동록개의 꿈’으로 대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원평傳’으로 2등 했다. 이 작품들은 기회가 닿으면 영화로 표출할 생각이다.
2021년.
내 인생 마지막 정착지를 정해야 할 기회가 왔다. 지평선 동네에 자리를 찾아 애쓰던중 운명처럼 1906년(병오년)에 지어진 옛집을 만났다. 그 집 포함 2채를 리모델링 했다. 소설<아리랑>의 중심지 김제 죽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죽산아이’가 탄생하게 된다. 죽산에 정착하면서 임영춘 선생의 소설 ‘갯뜰’을 만나고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을 다시 읽으면서 김제와의 인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서사는 구미란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게 된다.
죽산 내촌마을과 외리에서 시작되는 감골댁과 송수익, 지삼출, 공허, 방영근, 방대근과 차득보.... 의 삶결로 저항, 투쟁,연대의 맥락이 된다. 그들이 살았던 시·공간이 오롯이 현시점으로 이어지는(연결) 지점이 죽산이다. 동학농민혁명과 소설<아리랑>의 서사는 하나의 완결체로 역사가 된다. 1894~95년초에 외형으로는 일본군과 관군의 진압으로 혁명이 끝난 듯 하지만 내면으로 내면으로, 사람들 마음으로 마음으로 10여 년이 흘러들어 소설<아리랑>이 펼쳐진다. 일제강점의 아픔과 동시점으로 저항과 독립의 에너지로 작동하게 된다. 이후 4.19, 5.18,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의 ‘기반기억’으로 우리의 삶결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2022년도
죽산 근처 백산성(동학농민혁명군 2차봉기장소)에서 죽산을 바라보면서 상상했다.
백정 동록개와 김덕명, 전봉준, 그리고 구미란 뒷산의 동학농민군들과 지삼출, 내촌, 외리, 죽산 사람들은 함께 싸웠을 것이다. 조정래 선생은 그들이 바라보았던 죽산을 치밀한 인터뷰와 자료조사, 상상을 통해 현시점으로 건져 올렸다. 그 장면들을 지금으로 가져와 영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꿈.
130년전 ‘동록개의 꿈’이 있었고 10여년 뒤 ‘지삼출의 꿈’이 있고 지금 ‘안병권의 꿈’으로 이어진다. 천천히 죽산을 즐기면서 풀어야 한다. 내가 풀다가 시간이 없으면 또 누군가가 꿈을 꿀것이다. 김제 죽산에서의 일이다.